인형극으로 장애아 맞춤 성교육
“할아버지~ 어머니가 맛있는 반찬 가져다 드리라고 해서 가지고 왔어요.” “아이고 착해라 우리 허당이 이제 다 컸구나 엉덩이 토닥토닥 해줘야겠네.” “싫어요. 허당이도 이제 다 컸다구요.” “그래? 그럼 얼마나 잘 컸는지 어디 한 번 볼까?”
“악!!! 안돼!!!”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무대 위에서 움직이던 인형을 묵묵히 바라보던 학생들의 입에서 순간 “안돼요”, “싫어요” 날카로운 외침이 터졌다. 노란색 탈을 쓴 소녀 인형 ‘허당이’가 옆집 할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학생들이 발까지 동동 구르며 저지하겠다고 목청껏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처럼 단호하게 학생들이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는 처음이라 인솔교사들도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적장애 등을 가진 특수교육대상 학생 7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한 인형극이 열린 27일 오전 묵동초등학교 소강당에서 마주한 풍경이다.
이 날 인형극은 장애학생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적확히 인식하도록 꾸민 일종의 맞춤형 성교육이다. 소녀 인형 허당이와 등장인물들이 문제 되는 상황을 보여주면 관객인 학생들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 “안돼요”라고 소리쳐 상황이 중단되도록 연출했다. 지적장애를 앓는 의붓딸을 수년 간 성폭행하는가 하면, 최근엔 버스기사들이 17세 지적장애 여고생을 유인해 성폭행을 저지르는 등 장애학생들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한 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인솔교사들은 장애학생들이 직접 상황을 판단해 의사를 표현하도록 한 이번 인형극이 피해 예방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 공립초등학교 특수교사 노모(28)씨는 “장애학생들은 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거부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학생들을 연극에 참여시켜 뭐가 되고, 안 되는지 직접 판단하고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준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서울 종암초등학교 특수교사 박신혜씨는 “교실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업과 학생들이 직접 상황을 체험하고 의사를 밝혀보는 인형극은 차이가 크다”며 “학생들이 모두 ‘안 돼요’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교육 효과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학생들에게 잘못된 상황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만든 ‘장애학생 피해 성폭력 예방교육 현장 매뉴얼’에 따르면, ‘친밀감의 좋은 접촉과 성폭력의 나쁜 접촉 구분해 인지하기’, ‘도움 받을 수 있는 장소와 사람 알기’ 등이 명시 돼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집계한 전체 장애여성 성폭행 피해(2013년 1,673건ㆍ2015년 1,625건) 가운데 19세 미만의 피해 비율이 2013년과 2015년 모두 28%(471건ㆍ373건)에 달한다는 사실 역시 장애학생 대상 성폭력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교육부가 2012년 장애학생 인권보호 지원 방안을 수립해 전국 특수교육지원센터에 매년 1,000만원씩 특별교부금을 내려 보내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장의 얘기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팽지영 동부특수교육지원센터 총괄팀장은 “자기 기분이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자기 표현 방법을 알려주는 유용한 교육인 ‘자기옹호프로그램’은 예산 제약 때문에 선착순으로 일부 학생만 받아 교육하는 실정”이라며 “필수적인 교육에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충분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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