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재난영화를 좋아한다. 비행기 사고, 화재, 화산폭발, 지구 멸망 등 재난의 종류도 가리지 않는다. 옛날 분이라 오랜만에 극장에서 보는 영화이니 돈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스케일이 큰 영화가 흡족하고, 재난영화는 대부분 스토리가 단선적이라 나이 든 엄마가 이해하기에 쉽기 때문이다. 재난 현장에 뛰어든 주인공이 마침내 가족을 구하고(때로는 많은 사람을 구하는 영웅이기도 하고) 끝을 맺는 해피엔딩. 나이든 분에게 이만한 오락거리가 없다.
그런 엄마가 TV에서 가끔 방영하는 일본 후쿠시마 지진에 이은 쓰나미 영상은 보지 못한다. 영화가 아니고 현실이다 보니 그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생각나서 힘들다고 했다. 게다가 현실은 재난 영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니지 않나. 재난이 일어난 현장에서 살던 이들은 남아서 또 살아가야 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엔딩은 없고 고통은 지속된다.
지난 몇 주 동안 이어진 지진에 반려동물 커뮤니티도 들썩였다. 지진 발생시 반려동물과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생각도 못했다가 당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진이 오기 전에 동물들은 전조 증상을 느껴서 이상 행동을 한다는데 자신의 반려동물은 잠만 잤다며 무용지물이라고 시시덕거리기도 했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정작 지진 발생시 자신도 어떻게 대피해 할지 무지한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지진이 나면 원전이 더 걱정인 세상이 되었다. 원전 사고 후의 세상은 어떨까? 재앙이 닥친 도시에서 인간과 관계를 맺었던 동물들은 어떻게 살까?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의 저자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아프가니스탄, 유고슬라비아 등 여러 분쟁 지역을 다녔던 사진작가인 저자의 눈에도 후쿠시마의 비극은 처참했다. 그럼에도 그는 카메라를 들어서 기록하기 시작했다. 언론의 출입이 차단된 지역에서 일어나는 이 비극을 기록하지 않고 그냥 있다가는 그곳에서 벌어진 일이 전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재앙은 약자에게 더 가혹했다.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끝없이 죽어갔다. 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많은 수가 익사했고, 살아남은 동물들도 돌봐주던 사람들이 사라지자 죽어갔다. 곧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사람들은 개에게 목줄을 채우거나 고양이를 방에 가둔 채 피난을 떠났는데 끝내 돌아오지 못하자 동물들은 집에서 굶어 죽었다. 운 좋게 풀려있던 동물들도 돌봐줄 사람이 사라지자 굶주린 채 떠돌다가 죽었다. 소, 돼지 등 가축도 굶어 죽거나 물을 찾아 헤매다가 용수로에 빠져 죽었고, 용케 살아남은 가축들은 방사능 오염으로 식용으로 판매가 불가능해지자 정부는 살처분 명령을 내린다. 인간을 위해 존재했던 동물들에게 자비는 없었다.
전기 수요가 많은 대도시에 전력을 대기 위해서 원전은 다른 지역에 지어진다. 후쿠시마도 목축업, 농업, 수산업 등이 주요 산업인 지방 도시였다. 후쿠시마 주민들의 소망은 원전 사고 이전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목장을 운영하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것이지만 이제 그건 불가능하다. 인간만이 이 땅의 주인인 듯 살아가는 세상에서 동물은 언제나 약자이지만 원전 지역의 사람들도 상대적 약자이다. 이 시대 원전 지역은 대도시의 식민지가 아닐까.
우리나라는 지진의 안전지대라면서 원전을 짓더니 지진이 난 후에는 그래도 원전은 안전하다고 우기는 정부를 어떻게 믿을까. 저자가 사고 직후 후쿠시마에서 만난 누렁이는 한참을 먹지 못해 배가 고팠을 텐데도 주는 사료를 먹지 않고 자꾸만 저자에게 다가와 기댔다.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컸던 것이다. 또 다른 개는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갑자기 사료를 먹자 바로 토했는데 이후 다시 먹고, 토하고를 반복했다. 이 녀석은 목줄이 매어져 있지 않아서 먹을 것을 찾아서 떠나도 됐건만 집을 지키며 떠난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재해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인간이 초래한 재앙으로 인간과 관계를 맺은 수많은 생명까지 고통 받는 이런 상황은 이 땅에서 기필코 피해야 한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책공장더불어, 오오타 야스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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