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이 토론 승리로 트럼프의 상승세를 저지했다.’ 미국 CNN방송 해설자가 1차 TV토론이 끝난 직후 내놓은 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적합한 기질과 성품을 보여주지 못한 반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 내용과 이미지 측면 모두에서 토론을 입도하면서 45대 미국 대통령이 될 확률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토론 직후 주요 전문가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은 클린턴을 승자로 지목했다. ‘머리와 어깨’(Head and Shoulder) 수준의 압도적 차이로 이겼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정치평론가 제이슨 이즐리는 “토론의 내용뿐만 아니라, 당당하고 차분했던 클린턴이 이미지 측면에서도 수시로 물을 마시며 남의 얘기에 끼어든 트럼프에 우위를 보였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클린턴이 토론을 지배했다”고 분석했다. CNN이 TV토론 시청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62%가 클린턴을 승자로 꼽았고, 트럼프 비율은 27%에 머물렀다.
반면 트럼프는 이메일 스캔들과 클린턴의 신뢰성 등 제대로 된 공격 거리는 놔둔 채 특유의 거짓주장과 남의 말에 끼어드는 모습을 보이는 자충수를 뒀다는 평가다. 스스로 ‘토론의 달인’으로 자부하며 준비를 소홀히 한 결과라는 분석도 뒤따랐다.
끊임없이 변하는 선거판의 속성상 이변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2016년 미국 대선의 분수령으로 평가 받던 1차 토론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대선결과를 둘러싸고 거액을 ‘베팅’하는 미국 예측시장에서는 토론이 끝나자마자, 클린턴에 돈이 몰리면서 당선 확률이 토론 직후 1시간 만에 4%포인트나 상승했다. 이메일 스캔들, 건강문제, 클린턴 재단 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지며 최근 1개월 간 까먹은 당선확률의 절반 이상을 단숨에 만회한 것이다.
반면 트럼프 확률은 급락했다. 클린턴이 상승세를 탄 것과 정반대로 움직이며 단숨에 3%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토론회 시작 직전 6대4 정도였던 예측시장의 클린턴과 트럼프에 대한 당선확률이 7대3 수준으로 확대됐다.
미국 전문가들도 지지율 조사에서 앞선 후보가 1차 토론에서 승리하고 패배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들어 대세가 클린턴에게 기울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특히 역대 최악의 두 ‘비호감’ 후보를 놓고 미국 유권자의 3분의1 가량이 마음을 정하지 않은 채 토론을 지켜봤다는 점에서 경합지를 중심으로 대선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토론 선전을 바탕으로 클린턴이 경합지에서 상승세를 탈 경우 초접전 양상으로 좁혀졌던 대선 판세는 다시 클린턴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크다. 토론 직전까지만 해도 CNN 조사에서 클린턴(44%)이 트럼프(42%)와 같은 수준으로 내려오는 등 판세는 갈수록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LA타임스와 블룸버그 여론조사에서는 트럼프(43%)가 클린턴(41%)을 앞서는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클린턴이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콜로라도주 등 경합지에서 지지율을 끌어 올린다면 선거인단 경쟁에서는 낙승까지 예상된다. 신용평가업체 무디스는 이날 자체 선거 예측 모델을 토대로 클린턴이 332명, 트럼프가 2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트럼프 쪽으로 간주된 일부 경합지가 클린턴에게 넘어간다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게 된다.
물론 역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메일 의혹과 건강문제 등 클린턴의 약점이 돌발 사건에 의해 재부각되고 남은 두 차례 토론에서 트럼프가 새로운 면모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에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밋 롬니 공화당 후보와의 1차 토론에서 고전한 뒤 수세에 몰렸지만, 2ㆍ3차 토론에서 선전해 기사회생한 사례도 있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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