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단과대학 설립 반대로 시작된 이화여자대학교의 시위가 50일이 넘어가며 장기화하고 있다. 총장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선 학생들은 교육부, 경찰청 등에 2,000여건의 민원을 제기한데 이어 지난 20일 교내 행진을 했다.
학생들이 총장 사퇴를 요구한 것은 평생단과대학 설립을 비롯해 대학의 의사결정에서 학생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그 책임이 총장에게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대 사태의 본질인 학교와 학생간의 ‘소통 부족’은 여러 대학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문제다. 학생들은 총장 선출 방식부터 등록금 산정, 정부 지원 사업, 학과 및 교과목 구조조정 등 학내 주요 사안들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학생 참여 없는 총장 선출 제도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을 뽑을 때에도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우선 정부 권고로 총장 직선제가 사라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교육부에서 편 가르기와 선거 후 보직 나눠먹기 등의 폐단을 우려해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원대 경상대 부산대 등 많은 대학들이 교육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장 직선제를하고 있다. 지난해 부산대의 경우 김현철 교수가 총장 직선제 수호를 요구하며 투신 자살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교육역량강화사업 등을 공고할 때 총장 직선제를 시행하는 학교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총장 직선제는 우리가 원하는 사람을 뽑아 대학을 운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직선제 때문에) 우리도 정부지원사업에서 많은 불이익을 받아왔고 구멍 난 재정을 메우기 위해 교수들이 십시일반 돈을 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교육부에서 임명제청을 연기하거나 거부하는 바람에 경북대, 강원대, 경상대, 공주대, 전주교대 등 7개 국립대는 총장자리가 비어 있다. 이 중 경북대는 총장 공석 상태가 21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지난 5월부터 교육부를 상대로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경북대생 김 모(22)씨는 “정부 입맛에 맞는 인사를 뽑는 총장 간선제는 대학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조차 막은 것”이라며 “교육부가 앞장서서 대학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총장을 선출하는 사립대들도 재단의 지나친 간섭이 문제가 되고 있다. 동국대는 2014년 12월 제18대 총장 선출과 관련해 종단 개입 문제 때문에 학생들과 법정 소송까지 벌였다. 동국대 교수협의회 역시 논문 표절 의혹에도 불구하고 한태식 총장을 선출한 이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신대도 총장 선출 문제로 학생과 이사회가 갈등을 겪고 있다. 학생들은 투표를 통해 총장 후보들 중 1, 2위를 이사회에 올렸으나 3위 후보였던 강성영 교수가 총장에 선출되면서 논란이 됐다.
한신대 총학생회는 이에 반발하며 농성을 벌였다. 하지만 이사회는 “학생들의 투표 결과를 참고했지만 총장 선출은 이사회 의무”라며 농성을 벌인 학생들을 특수감금 혐의로 고소했다가 취하했다. 그러나 학부모들까지 '한신 민주화를 위한 학부모연대'를 결성해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어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이대 학생들도 이번 평단 사태를 계기로 총장선출방식 개선을 위한 협의체를 마련하자고 요구했다. 교수들이 중심이 된 추천위원회가 2명의 총장 후보를 선출하고 이사회가 총장을 선임하는 현 방식에 학생들이 배제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명수 이화학당 이사장은 “총장의 해임 또한 총장후보 선출에 참여했던 구성원들의 동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무용지물 대학평의원회
대학평의원회는 대학 민주주의를 위해 2005년 사립학교법를 개정하며 도입됐다. 대학 법인의 일방 독주와 사학 비리를 막고 교직원과 학생이 의사결정에 참여해 민주적으로 운영하라는 취지다.
문제는 일부 대학에서 평의원회가 취지와 달리 단순 심의기구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점이다. 이런 학교들은 평의원회가 학과 구조조정이나 교육과정 개편에 의견을 내놓아도 이를 무시한 채 진행한다. 2013년 중앙대는 평의원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교민속?청소년?아동복지?가족복지의 폐과를 결정했다. 한남대도 같은 해 철학과 폐과에 대해 평의원 11명 중 9명이 반대했지만 강행했다.
평의원회에 참여하는 학생 비중이 적다는 점도 문제다. 보통 11명의 평의원 중 학생 평의원은 1,2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 학생 평의원 30% 이상을 보장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오규민 한양대 총학생회장은 “학내 의사결정구조에서 가장 개선되어야 할 점은 대학 평의원회에서 학생 위원 수를 늘리는 것”이라며 “학생과 학교 측 실무진이 이야기를 나누는 기구가 단순 자문을 넘어 심의, 의결 기구 역할을 해야 학생 측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고 말했다.
교직원이나 교수측 평의원도 총장이 위촉하면서 재단측에 유리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2013년 이대는 평의원회 교수대표 4명 중 3명을 교무위원인 단과대학장으로 선임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 이대 교수협의회는 교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줄었다며 이에 반대하는 소송을 벌였으나 법원에서 단과대학장도 평의원이 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학 내 민주주의 강화, ‘주인 의식’ 필요해
대학에서 학생들 의견이 배제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도적 보완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 대학평의원회가 제대로 운영되는 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리시대를 생각하는 인하대 교수모임 대표인 김영 교수는?”대학평의원회가 설치됐다고 해서 민주적 운영을 보장할 수 없다”며 ”총장 입맛에 따른 인사들로 채워 놓아 대학의 거수기로 전락한 만큼 정부의 진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규민 한양대 총학생회장도 “학교 측과 학생측이 의견을 나누는 좋은 수업 전담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유의미한 의사 결정보다 학교 측이 학생들을 설득하는 자리로 이용하고 있다”며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은 굉장히 한정돼 학생 측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학생들이 주인 의식을 갖고 학내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도현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은 “학생들이 취업준비 등으로 학내 문제에 관심을 갖기 힘든 현실이지만 대학 구성원 개개인에 미치는 영향이 큰 문제들에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설이 인턴기자
최유경 인턴기자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
☞ 학생들을 위한 대학은 없다
(2회) “학과 헤쳐 모여” 정부 사업에 목매는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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