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미국 대선 TV토론은 대선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분수령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재치나 언변 또는 치명적인 실수를 이끌어낸 후보들이 TV토론을 ‘게임 체인저’로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26일 행사는 1960년 민주당 대선후보 존 F. 케네디와 공화당 대선후보 리처드 닉슨이 맞붙었던 TV토론 이후 최대 빅 이벤트로 꼽히고 있다. 케네디-닉슨 TV토론에서는 케네디가 단번에 전세를 역전했다. 당시 현직 부통령이던 닉슨은 풍부한 국정경험을 바탕으로 젊은 상원의원이던 케네디를 토론 직전까지 2% 포인트 우위로 앞섰다. 하지만 토론에서 케네디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불안하고 어두운 모습의 닉슨과 대비되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 잡으며 대권을 손에 쥐었다. 특히 당시 “이 나라는 강한 나라지만 더 강해질 수 있다”라는 케네디의 발언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1980년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민주당의 지미 카터 간 대선 TV토론은 약 8,000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관심을 보이면서 대선의 판도를 뒤흔든 사례로 거론된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은 특유의 유머와 여유 있는 태도로 시종일관 직전 대통령인 카터를 압도했다. 4년 뒤인 1984년 민주당의 월터 먼데일과 TV토론을 벌일 때는 73세였던 자신의 고령 문제를 먼데일이 집요하게 지적하자 “나는 내 경쟁자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지 않겠다”고 재치 있게 받아넘기며 승기를 잡았다.
TV토론회와 부시 일가의 인연도 남다르다. 1992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 조지 H 부시가 민주당 빌 클린턴과의 TV토론 도중 초초해하며 손목 시계를 자주 쳐다보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미 언론들은 부시 후보가 유권자에게 유약해 보인다는 인상을 남겼고 클린턴에 패하는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2000년 TV토론에서는 아들 조지 W 부시가 당시 부통령이던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맞붙었다. 고어는 현란한 언변으로 부시를 압도했지만, 유권자는 거만한 이미지의 고어 대신 부시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일각에서는 TV토론이 우세한 지지율을 등에 업고 토론장에 들어간 후보의 대세론을 확인시켜줄 뿐 이변을 연출한 경우는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NBC방송은 1980년 레이건-카터 TV토론이 ‘게임 체인저’로 거론되곤 하지만 레이건이 대선 전 5개월 전부터 카터를 견고한 차이로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고 지적했다. NBC는 “케네디-닉슨 TV토론 시절과 달리 이제는 대선후보들이 TV토론에 나오기 앞서 수많은 TV광고와 신문, 온라인 등에 노출돼 고정된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며 “TV토론이 점점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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