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진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 산재한 공사중단 방치건축물 387곳이 지진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방치건축물 주변에 거주하는 국민은 ‘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셈이다.
25일 국토교통부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윤영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국토부가 가진 방치건축물 지진대책은 ‘안전조치가 필요한 현장은 출입금지와 가설자재정리 등의 조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것이 사실상 유일했다. 다른 대책은 ‘내년 안에 시도별로 방치건축물별 정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단계적으로 정비하도록 독려하겠다’는 것이었다. 모두 방치건축물 안전관리에 관한 원론적인 대책일 뿐 지진대책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국토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맡겨 조사한 바에 의하면 공사가 2년 이상 중단된 방치건축물 현장은 전국에 387곳이나 된다. 최근 강진이 발생한 경주가 있는 영남지역의 방치건축물현장은 전체의 15.8%인 61곳이었다. 국토부는 개인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정확한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방치건축물 상당수는 주거지역이나 도심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작년 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에 선정된 경기 과천시 우정병원이나 강원 원주시 주상복합아파트 등은 아파트단지나 주택가에 인접해 있었다. 또 판매·업무시설을 짓다 만 방치건축물 현장은 전체의 29.2%로 이곳들은 대체로 도심지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된다.
방치건축물은 평상시에도 각종 안전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곳이다. 실제로 구조물이 들어서 있는 방치건축물 현장(350곳) 가운데 구조물의 안전등급이 C등급(보통) 이하인 곳은 264곳(75.4%)에 달했다. 정밀조사를 거쳐 구조보강이나 철거가 필요한 E등급도 13곳(3.7%)이었다. 작은 지진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흙막이 등 가설구조물과 대지의 안전등급이 C등급 이하인 방치건축물 현장은 258곳(73.7%)이었고 상당수 현장은 타워크레인 등 건설장비도 장기간 방치된 상태였다.
문제는 방치건축물에 대한 기본적인 안전조치인 출입통제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태조사를 수행한 LH는 보고서에서 “장기방치건축물 대다수가 울타리 등이 훼손되거나 설치조차 되지 않아 출입통제 등 최소한의 조치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국토부가 광역자치단체에 전달한 방치건축물 관련 ‘안전조치가 필요한 항목’ 443건 가운데도 출입금지조치가 176건(39.7%)으로 가장 많았다.
출입금지조치도 제대로 안 이뤄지는 탓에 재작년 경남 창원에서는 방치건축물에 자폐아동이 들어가 지하에 고인 물에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방치건축물이 무너져 주변에 피해를 줄 가능성뿐 아니라 방치건축물에 사람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방치건축물 건축주가 스스로 내진보강에 나서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LH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방치건축물은 건축주가 자금이 부족하거나 파산해 공사가 멈춘 곳이다. 돈이 없어 공사를 중단한 사람이 내진보강을 시행할 여력이 있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건축주와 연락이 안 되거나 공사중단으로 심리적 압박을 받는 건축주가 방치건축물 관리·점검에 비협조적인 경우도 많다. 건축주에게서 받을 빚이 있는 유치권자가 점유한 방치건축물 현장은 상황이 더 어렵다. 윤영일 의원은 “지진에 취약한 방치건축물들이 대책 없이 말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면서 “방치건축물정비법에 따라 수립되는 정비계획에 지진대책을 포함하고 이를 시급히 시행하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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