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로 정관ㆍ낙태 수술을 받은 한센인들에게 국가배상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단이 다시 나왔다. 서울고법은 한센인 139명이 낸 국가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국가가 남녀 피해자들에게 동등하게 2,000만원씩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인들에게 단종ㆍ낙태 수술을 한 것은 근거 법령 없이 이뤄진 일로 인격권과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한센인들이 사회적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척박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온 데 대해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도 밝혔다.
한센인에 대한 국가의 인권유린 실태는 정부 주도 진상조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2007년 제정된 한센인 피해자 지원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진상규명위원회 조사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각종 폭력과 낙태 등의 피해자가 6,462명에 달했다. 하지만 특별법은 정부의 사과나 국가배상 의무 규정이 없이 소액의 위로지원금만 지급하도록 해 한센인들의 분노를 샀다. 한센인 피해자 가운데 정관ㆍ낙태 수술을 받은 500여명이 2011년부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배경이다.
그동안 5건의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모두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부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길 거듭해 왔다. 현재 대법원에 1건, 서울고법에 4건이 계류돼 있다. 정부 스스로의 진상조사에서 잘못이 확인됐는데도 국가배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지난달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한센인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분명하게 한 한센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한 것도 이런 이유다. 또 일본은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한센인 격리에 대해 사과하고 800만~1,400만 엔씩 보상했다. 대만도 2008년 정부 차원의 반성과 사과를 했다.
한센병은 유전질환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옮는 전염병도, 불치병도 아니다. 결핵과 마찬가지로 법정 3군 감염병으로 분류돼 있으며, 오히려 전염성은 결핵에 비해 100배나 약하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센인들은 무지에서 비롯한 인권 유린과 차별을 강요받았다. 일제 강점기 때부터 동거를 원하는 부부에게 해 온 강제수술이 1990년대까지 시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센병 환자 격리수용 정책이 폐지될 때까지는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국가배상 소송이 제기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한센인들이 소송을 제기하기에 앞서 국가가 먼저 사죄하고 배상해 마땅하다. 책임 있는 정부라면 거듭된 소송 불복을 포기하고, 국가책임을 명확히 하는 특별법 개정에 앞장서는 것이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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