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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고위공직자 집안 병역문제

입력
2016.09.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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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당시 유엔군사령관을 지낸 마크 클라크 장군은 1953년 7월 휴전 직후 시카고의 한 여성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장군의 아들이 전쟁 와중에 본국으로 갑자기 귀환한 것은 당신이 배후에서 힘을 발휘한 게 아니냐”는 내용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병사의 어머니로 보이는 그 여성은 미군 사상자가 14만여명에 이르는 전쟁터에서 장군의 아들은 비겁하게도 권력의 특혜를 누린 게 아니냐고 질책했던 것이다. 클라크 장군은 자서전에서 모욕적이었지만, 이해가 가는 부모의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 웨스트포인트 출신의 윌리엄 클라크 대위는 보병 중대장으로 금화지구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본국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던 상태였다. ‘단장의 능선’ 등 이전 전투에서 이미 세차례나 부상을 한 월리엄 대위는 금화지구 중상이 치명타가 돼 2년 뒤 직업군인의 길을 접었다. 클라크 장군으로서는 억울할 만하다. 그는 “장군의 아들들이 전투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편안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엄청난 오해”라며 “장군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사망ㆍ부상하는 놀라운 사상률을 보였다”고 적었다.

▦ 국정감사의 단골소재인 고위공직자와 그 자녀의 병역문제가 국민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다. 최근 5년간 고위공직자와 직계비속의 병역면제율은 7.7%로 일반인 병역면제율(0.26%)보다 29배 높다고 한다. 본인은 물론 자녀까지 면제를 받은 고위공직자만 100여명에 달한다니 대대로 허약한 고위공직자 집안이 왜 이리 많은가. 현역 복무 중인 4급 이상 고위공직자 자녀(738명)가운데서도 절반이 넘는 54%(356명)가 비전투 병과나 비전투 부대에서 근무 중이라고 한다. 이 또한 우연인가.

▦ 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나 그 자녀가 병역 의무를 교묘히 피해가고, 흔히 말하는 ‘꽃 보직’만 꿰차면서 국민에게 ‘신성한 의무’를 강요할 수는 없다. 고위공직자나 그 자녀의 병역특혜라는 고질적 병폐가 여전히 나아질 기미가 없다. 고위공직자 자녀의 병역이 특별 관리되지 않는다면 국민의 ‘흙수저’의식은 안보 위기에 큰 짐이 될 터이다. 정부가 뒷짐만 질 요량이라면 차라리 모병제로 전환해 청년들이 정당한 봉급과 대우를 받고 군복무를 하도록 하는 게 낫다.

정진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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