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효진의 동물과 떠나는 세계여행]
호주 브리즈번 대이보로(Dayboro)에는 농장동물 구조단체 ‘팜애니멀레스큐(Farm Animal Rescue,이하 FAR)’가 있다. 약 63만m2의 부지에 소 13마리, 돼지 7마리, 닭 19마리, 오리 1마리, 염소 13마리, 양 8마리가 산다. 자원봉사자들은 해가 뜨는 시간인 아침 5시 45분에 일을 시작해 해가 지는 저녁 6시까지 일한다. 동물들을 돌보기 위해서다. 동물들이 자는 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드넓은 땅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동물들을 찾아 밥을 준다. 행여나 너무 멀리 나가 길을 잃을까 시간 맞춰 동물들 수를 센다. 다친 데는 없는지도 살펴본다. 여기서 한 달을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 동물들 본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그 동물 자체로 살아가고 있었다.
돼지들은 먹을 것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아웅다웅 하지만 사람들에겐 친절했다. 사람들이 배를 문질러주면 돌아누워 배를 내밀었다. 염소와 양들은 풀을 찾아 함께 돌아다녔다. 닭은 어디서든 가장 아늑한 곳을 찾아 알을 낳고 흙에 몸을 비벼 몸에 붙은 벌레를 떼어냈다. 좁은 케이지에 갇힌 스트레스로 서로를 물어뜯는 행동은 없었다. 그래서 공장식 축산시스템에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하듯 이빨을, 꼬리를, 부리를 잘라낼 필요도 없었다.
호주의 돼지, 닭 등은 아직 좁은 케이지 안에서 키우는 경우가 많다. 닭을 방사해 자유롭게 키워서 얻은 ‘프리레인지(Free range)’ 계란도 시중에 판매하고 있지만, 케이지만 벗어났을 뿐, 여전히 너무 많은 수의 닭들이 좁은 공간에 함께 있어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소들은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에 방목해 키운다. 그렇더라도 그 이후 도살장으로 가는 과정에 물도 먹이도 없이 며칠을 버텨야 한다. 방목 또한 친환경적이라 볼 수 없다. 소들에게 먹일 초지를 조성하기 위해 많은 숲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호주’하면 사람들은 드넓은 초원에서 마음껏 풀을 뜯으며 사는 행복한 소들을 상상한다. 나 또한 그랬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 본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의 공통점은 열악한 환경에서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하며 동물들의 사연을 하나씩 알아갔다. 송아지 ‘케일’과 ‘알피’는 현재 FAR의 마스코트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과거의 삶은 꽤나 달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는 임신을 해야 우유가 나온다. 계속해서 우유를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들은 암컷을 임신시키고 새끼는 떼어놓는다. 케일과 알피는 수컷이기 때문에 농장에서는 필요가 없었다. 그럴 경우 죽여서 송아지고기(veal)용으로 팔지만, 알피는 온 몸이 진드기로 덮여 있었고 케일은 만성 폐렴에 걸려 아무도 사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행히 어떤 사람이 이 송아지들을 사서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가슴에 반달가슴곰 무늬가 있어 친근했던 검은 소 ‘샘’은 어미가 도살장으로 끌려갈 때 뱃속에 있었다. 어미인 ‘프레셔스’는 고기가 될 판이었다. 이런 경우 어미를 죽인 후 뱃속의 송아지는 가죽으로 쓴다. 그러나 다행히 이미 많은 소들을 쑤셔 넣은 트럭에는 프레셔스를 넣을 자리가 없었다. 이동비용을 들이는 것 보다 파는 게 이득이었기 때문에 이 모자를 구조할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을 동물들과 함께 지내고, 이야기들을 나누며 단지 농장동물이었던 희미한 개체들은 저마다 이름과 성격을 가진 특별하고 뚜렷한, 그야말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머무는 숙소에는 동물성 식품과 물건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다는 원칙이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한 달간 함께 살던 친구들과 매일 다양한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나는 오뎅이 들어가지 않은 떡볶이, 소고기가 없는 잡채, 그리고 계란 없이 비빔밥을 만들어 대접했다. 특히 액젓 없는 김치로 만든 김치전이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먹거리에 대한 선택이 오로지 내가 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한 것이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려져 있던 축산업과 자본주의의 장막을 걷으며, 내가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지 자문해보았다. 한 달간의 자원봉사가 끝나 숙소를 나온 지금도 나에게는 더 이상 이 의미 있는 존재들이 ‘먹거리’로 보이지 않는다.
글·사진=양효진 수의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동물원 동물큐레이터로 일하고, 오래 전부터 꿈꾸던 ‘전 세계 동물 만나기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을 시작했다.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자연보호구역, 수족관, 농장 등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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