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학원에 다녀온 여덟 살 조카가 엉뚱한 필통을 들고 왔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친구가 바꾸자고 했단다. 딱 보아도 원래 제 것보다 훨씬 낡은 필통이다. “네가 바꾸고 싶어서 바꾼 거야?” 물었더니 아니란다. 왜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물으니 대답이 기가 막혔다. 친구가 조카의 팔을 잡고는 화장실에 데려갔다는 거다. “나는 쉬야를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화장실에 가자고 그랬어.” 그러고는 필통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절대 놀아주지 않겠다고 했단다. 놀아주지 않을까봐 걱정이 된 조카는 결국 필통을 내주었다. “근데 걔도 쉬야를 안 했어. 그럼 왜 화장실에 가자고 한 거지?” 조카가 갸웃거렸다.
참담한 기분이 몰려들었다. 여덟 살 아이에게 쉬야도 안 하면서 화장실에 간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주어야 할까. 학원 원장에게 재발 방지를 당부하고, 상대 아이의 부모에게 전화를 해 항의를 하고… 그럼 이 일이 해결되는 것일까. 그게 다일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 외의 해결책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조카를 화장실에 데려간 아이는 그 못된 행동을 누구에게 배웠을까. 다른 친구에게 배웠을까. 그럼 그 친구는 또 누구에게 배웠을까. 그게 아니라면 폭력적인 영화? 아니면 게임? 공부밖에 모르던 순진한 검사가 장사하는 친구가 내미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이 지경까지 오고 말았다는 황당한 칼럼을 싣는 신문? 여동생은 한숨을 쉬었다. “너도 여덟 살이 처음이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모든 일이 다 서툴구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정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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