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자가운전 문화 정착 판단
총리 “제도 폐지” 지시 불구
15년 넘게 부당지급 ‘방만 경영’
한전 “지시 몰랐다” 해명
한국전력과 자회사들이 15년 넘게 고위직 직원들의 자가용 이용 지원비로 수백억원을 부당 지급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으로 국민 불만이 폭발 직전이 상황에서 전기공급과 생산을 책임지는 한전과 자회사들의 잇단 방만 경영으로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한전과 자회사들에게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전은 2011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5년 간 전용 차량이 없는 1~3직급 사업소장과 본사 부서장들에게 자가운전 보조비 명목으로 다달이 30만~50만원씩 총 75억5,000여 만원을 지급했다. 매년 15억원 가량을 지급한 것인데, 2011년 이전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
자가운전 보조비는 1994년부터 국무총리 지시사항으로 자가운전 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자가 차량을 업무용으로 쓰는 공무원과 정부 투자기관 직원들에게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 이한동 국무총리는 ‘자가운전 문화 정착으로 목적이 달성됐다’며 이 제도의 폐지를 지시했다.
하지만 한전은 이후 15년 넘게 해마다 200여명 이상의 고위직들에게 15억여원을 보조비로 계속 지급했다. 어기구 의원은 “한전이 매년 지급 금액의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만큼 모두 합하면 최소 200억원이 지출됐다고 볼 수 있다”며 “보조비는 당초 자가용을 업무용으로 쓰는 직원들에게 지급하는 취지에서 시작했지만 실제로는 전용 차량이 없는 고위직들의 쌈짓돈으로 쓰였다”고 말했다. 게다가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국원자력연료 등 한전 자회사들도 같은 기간 수 십억원을 보조비로 지급해 왔다.
심지어 2014년 2월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용차량 예산낭비 방지 관련 사용실태를 점검한 뒤 보조비 지급 규정을 폐지토록 권고했지만 한전은 만 2년이 지난 올해 1월까지도 보조비 지급을 계속했다. 한전 자회사들은 권익위 권고를 무시한 채 아직까지도 보조비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이날 본보와 통화에서 “2001년 보조비 지급을 폐지하라는 국무총리 지시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총리의 지시 대상은 중앙정부 부처로 한정됐고,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별다른 지시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상위 부처인 산업부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전과 마찬가지로 산자부 산하 준정부기관(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는 2010년 보조비 지급을 중단했다. 어 의원은 “상황이 이런데도 한전은 올해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아 직원 1인당 2,000만원 가까운 성과급을 받는다고 한다“면서 “전기료 누진제 폭탄 때문에 국민 마음이 무너지는데 한전은 방만 경영의 진수를 보여주었다”고 말하고, 보조비 전액 환급을 주장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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