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올해 절충형 유죄협상제 도입
다른 사람의 범행 진술하면 감형
한국도 학술대회 등 논의 불붙어
2010년 입법 추진하다 좌초
현장선 “뇌물사건에 효과 클 것”
지방검찰청의 김모 검사는 지난 3월 조직폭력배 H파의 사건을 수사한 뒤 행동대장 A씨 등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바람에 진땀을 뺐다. A씨가 수사과정에서 두목의 지시로 15~ 16세 여학생 3명을 유인해 성폭력 범죄에 가담했다고 자백했지만, 막상 법정에서 두목을 마주하자 보복이 두려워 말을 바꾼 것이다. 다른 수사를 미루고 법정에 나가 A씨 설득에 나선 김 검사는 그의 자백을 끌어냈고, 결국 1명을 제외한 H파 상부 조직원 전원이 자백하게 됐다. A씨는 자백한 사실이 양형에 참작돼 낮은 형량을 선고 받기만을 바라고 있다.
지난 5월 우리나라와 형사법 체계가 닮은 일본이 타인의 죄에 대한 진술로 형량을 협상하는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 절충안을 도입하면서 국내에서도 논의가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만약 A씨가 자백에도 불구하고 높은 형량을 받는다면 자백할 유인이 사라지고 이런 경우 진상규명은 요원할 것이다. 한국형사소송법학회(회장 한명관 변호사)와 독일형사법연구회(회장 박민표 대검 강력부장)가 9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NDFC)에서 ‘유죄협상제도’를 주제로 개최한 공동학술대회에서는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컸다.
유죄협상제도는 피의자ㆍ피고인이 스스로의 범죄사실에 대한 유죄 취지의 답변을 하는 대가로 검사나 법원이 혐의보다 가벼운 범죄로 처벌하거나 낮은 형량을 보장해주는 협상을 말한다. 크게 자기 범죄에 대해 자백하는 경우와 자신의 범행과 관련된 다른 사람의 범행에 대해 진술하는 경우(사법협조자 형벌 감면제도)로 나뉜다. 조직폭력 범죄나 뇌물, 마약 사건과 같이 증거 확보가 힘들고 자백이 핵심적인 범죄에서 필요성이 높다. 하지만 법무부가 2010년 ‘사법협조자 형벌 감면 및 소추면제를 위한 형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을 때는 수사ㆍ재판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적절하고 무죄추정의 원칙이 침해될 뿐만 아니라 공판중심주의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에 부딪혔고, 법안은 자동폐기됐다.
박윤석 의성지청장은 학술대회에서 “이 제도를 도입하면 사법자원의 효율성을 높이고 공판절차에 대한 부담을 더는 한편 협조한 피고인에게 혜택을 보장할 수 있다”며 “수사단계에서부터 적극 활용하는 미국식 제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제도를 도입할 경우 변호인의 협상 참여를 보장하고, 협상허용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부장검사는 “실무에서 비공식적으로 협상 관행이 있으므로, 이를 제도화해 수사와 재판이 늘어지는 사법자원 낭비를 막고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감면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검사는 “뇌물 사건의 경우 공여자의 형을 감면해주면서 뇌물을 받은 공무원의 죄를 밝히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하지만, 정작 공여자가 진술을 하지 않아 수사가 가로막힐 때가 많다”며 “사법협조자 형벌 감면제도를 도입해 뇌물 공여에 대해 진술할 경우 형벌을 감면해 준다면 진술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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