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합형 교육과정 시범실시
인접 고교 2~4개씩 묶어
촬영 등 비정규 과목 나눠 개설
학생이 원하는 수업 찾아 들어
교육과정 인정돼 학생부에도 기록
내신 불이익 우려 없애기가 과제
“우와 봤어? 기포 엄청 생긴다”, “지금 보이는 게 확산 현상이지? 성공했네!”
20일 서울 노원구 서라벌고 지하 1층 과학실험실. 정규 수업이 끝나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거나 야간 자율학습을 시작한 오후 7시30분, 하얀색 가운을 걸친 학생 18명만이 매캐한 양파 냄새로 가득 찬 실험실에 남아 현미경을 들여다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양파 표피세포를 활용한 삼투압 실험이다.
이들 대부분(15명)은 해당 수업을 듣겠다고 일부러 다른 학교까지 찾아 온 인근 4개 학교(불암고 대진고 대진여고 상명고) 학생들이다. 서라벌고는 서울시교육청이 4월 발표한 학교 연합형 교육과정의 일환으로 생명과학실험 수업을 개설했다. 2~4개 인접 학교가 정규 수업에서 가르치기 어려운 교과목을 나눠 개설해 소속 학생들이 학교를 옮겨가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한 정책이다. 노원구를 비롯해 강서구와 구로구 등 3개 권역 11개 학교에서 시범 실시 중이다.
수업 시간은 오후 6시부터 3시간씩 일주일에 두 번. 남들 수능 공부에 매진할 저녁 시간을 이만큼 할애해 정규 교과 외 수업을 듣는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학생들은 왜 이 곳에 모여 실험에 매진하고 있는 걸까.
간호사를 꿈꾸는 황효정(대진여고 2년)양은 "의료인이 되고 싶은 만큼 생명과학을 다루는 실험을 많이 해보고 싶지만 정규 수업시간엔 이론만 배울 수 있어 아쉬웠다"고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수업에 기대를 잔뜩 품은 이승욱(상명고 2년)군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책을 읽고 식품생명공학을 전공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가 아니다 보니 관심사를 구체화시킬만한 수업이 적었다"고 했다. 학력 수준이 다양하고 희망 진로가 각각이라 학생들 개별 욕구를 충족하는 수업 개설이 어려웠다는 점이 일반고의 한계였다면, 연합형 교육과정이 그런 고민들의 돌파구를 마련해 준 셈이라는 게 학생들 목소리다.
학생부종합전형의 확대에 따른 기대도 더했다. 김경서(대진여고 2년)양은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배우고 싶은데 실험에서 배우고 느낀 점을 구체적으로 자기소개서에 녹이면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명수연(불암고 2년)양은 "학교생활기록부에 외부 활동은 기재할 수 없지만 교육 과정 내에서 이뤄진 이번 실험 수업은 적을 수 있다"며 "관련 학과에 지원할 때 자신감이 붙을 것 같다"고 했다.
정책을 현장에 안착시키려면 해결해야 될 과제도 있다. 지금으로선 학교마다 내신 시험 기간이 달라 부득이하게 결석하는 학생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인접 학교끼리 시험 기간을 사전에 조율할 수 있도록 지침을 내려 보내야 한다는 게 현장의 지적이다. 김경서 양은 "학교마다 시험 기간이 다르다 보니 시험 공부에 지장을 감수하고 실험에 참석하거나, 실험 수업을 아예 빠져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소수의 우수 학생이 한 학교에 모일 경우 내신 성적에 불리할 수 있다는 걱정도 불식시켜야 한다. 정상찬 서라벌고 교무기획부장은 "올해는 첫 실시라 석차등급을 따로 내지 않지만 확대 실시되는 내년부터는 석차등급을 산출해 성적에 포함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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