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산 증인 조비오 신부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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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 산 증인 조비오 신부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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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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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선종한 천주교 광주대교구 조비오 신부 추모 미사가 광주 북구 임동 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되고 있다. 지난 1980년 광주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위원 역할을 한 조 신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연합뉴스
고(故) 조비오 신부

5ㆍ18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섰으며, 평생을 민주화ㆍ통일 운동에 헌신한 조비오(본명 조철현) 신부가 21일 오전 3시 20분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최근 암 말기 판정을 받고 광주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추석 연휴를 앞두고 퇴원해 광주로 돌아왔다. 1938년 4월 1일 광주 광산구에서 태어난 그는 69년 12월 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광주살레시오여고 지도신부(1971년), 레지오 마리애 광주 세나뚜스 지도신부(1977년) 등을 역임했다.

그는 80년 5ㆍ18 당시 신군부의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막기 위해 시민수습대책위원 16명과 함께 이른바 ‘죽음의 행진’에 나섰다가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몰려 4개월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는 출소 이후에도 신군부로부터 상경 제지를 받는 등 감시와 억압을 받았지만 5ㆍ18정신의 전국화에 앞장서며 민주화운동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고인은 89년 열린 5ㆍ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서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며 신군부의 잔학한 학살행위를 생생하게 증언하기도 했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마감한 그는 사회복지법인 소화자매원 이사장, 5ㆍ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광주ㆍ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등을 맡으며 줄곧 통일과 민족화합, 사회복지운동에 주력했다. 2008년 1월 16일에는 국내에서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이자 교황의 명예 사제인 ‘몬시뇰’에 임명됐다. 특히 그는 은퇴 후 교구청에서 제공하는 사제관을 거부하고 소화자매원 인근 66㎡(20평)짜리 아파트에서 홀로 살며 소외된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가 실천한 나눔의 정신은 엄격하리만치 철저했다. 그는 퇴임 후 교구청에서 매달 지원하는 생활비마저도 가난한 사람들과 소화자매원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매달 그의 통장 잔고는 ‘0원’이었고, 그가 남긴 유품도 평소 애독하던 책과 옷 몇 가지가 전부였다. 이처럼 평생 베풂의 삶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자신의 일신에 대해선 우둔하리만큼 무관심했다. 가족과 주위에서 암 발병 사실을 알고 병원 치료를 권유할 때도 “병원은 무슨 병원이냐”며 거절했다. 그는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이웃 사랑을 실천했다. 장의위원회가 평소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조화 대신 쌀을 받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로 한 것이다.

고인의 조카 조영대 신부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돌보지 않고 항상 비우셨고 나누셨던 사제께서 조용히 떠나시게 됐다”며 “고인의 사회정의와 나눔의 정신이 우리 안에 살아남아 사제들도 신자들도, 시민들도 고인이 실천한 섬김의 삶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빈소는 광주 임동성당 지하강당에 마련됐다. 장례 미사는 23일 오전 10시 빈소가 차려진 임동성당에서 치러진다. 장지는 전남 담양군 천주교공원묘원. (062)380-2811

광주=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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