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명절 첫 상에서 밥을 먹는 유일한 여자였다. 우리 친가는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여자들에게 절도 못 하게 했는데 나만은 예외였다. 친가 쪽으로만 10명이 넘는 오빠들을 가진 막내딸이었기 때문이다. 그 상을 물리고 나면 가장 어린 나를 제외한 여자들이 한 차례 식사가 끝난 상, 또는 옆에 대충 붙인 작은 상에서 밥을 먹었다. 물론 사이사이 그 여자 중 누군가는 사과와 배를 깎아 식사를 마친 남자들의 상에 ‘대령’했다. 사이에 커피를 타는 일 정도가 나의 몫이었다.
명절 아침마다 보는 이 풍경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건 중학생 때쯤이었다. 나는 스스로 여자들의 상으로 갔다. 나름대로는 항의의 의미였다. 하지만 첫 상에서도 구석 모서리에서 밥을 먹던 최하위 서열의 내가 자처해서 다음 상을 택한들 달라질 건 없었다. 여러 가지 변화로 차례와 제사를 지내지 않게 된 후로도 명절의 밥상 규칙에는 변함이 없었다. 성인이 된 뒤로 난 어떤 상에서도 밥을 먹지 않는 걸 택했다. 사촌들의 결혼으로 집안의 며느리가 늘면서 그들 중 누군가 적어도 먹던 상은 아닌 상에 밥을 차려 먹자고 말했지만 큰 집이 좁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내가 새언니라고 부르는 며느리 중 일부가 나처럼 밥을 먹지 않게 됐다. 첫 상에서 밥을 먹는 남자 중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를 눈치챘다.
물론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건 친척들이 곧 이 명절 아침상이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돌아가신 뒤 아버지의 남은 형제들은 명절을 각자의 가족끼리 치르기로 했다. 누구도 내게 ‘너도 결혼해야지’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이번 추석을 지나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집안의 여자들은 명절마다 두 번 상을 차리고 두 번째 상에서 밥을 먹거나 혹은 먹지 않기 중 하나를 택해야 했을 것이다. 누군가 이건 아니라고 말할 때까지. 그 말을 내가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소심하게 밥을 먹지 않는 것보다 그게 더 용기 있고,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말할 수 없었던, 혹은 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새언니들이 그 말을 하는 대신 나와 함께 밥을 먹지 않았던 이유는 또 뭘까.
아마도 각자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부모님과 갈등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말로 첫 상에 앉은 이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도 없었다. 명절 당일 반나절만 참고 못 본 척 넘어가면 될 문제라고도 생각했다. 다들 비슷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차례는 안 지내니까. 이보다 심한 경우도 많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말을 하는 게 더 나았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야 당연하게 첫 상에 앉아 밥을 먹고 깎아진 과일과 자신이 젓지 않은 커피를 제 몫으로 가진 남자들이 그 상황을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사과를 여자들만 깎는 게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들 중 한 명이라도 바뀐다면 이전보다는 나아질 것이므로.
누군가는 상을 엎었어야 한다고, 과일을 깎지 않았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바뀐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불합리함을 견디고 있는 개인에게는 각자의 이유와 사정이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 이유와 사정을 넘어서는 것 역시, 각자의 몫일 것이다. 내가 가장 아쉬운 건 같은 성(性)이며 동시에 다른 성(姓)인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했더라면 좋았으리라는 것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결되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각자의 자리에 선 여자들의 외로운 전투에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 글은 반성문인 동시에 이제부터는 당연히 첫 상에 앉는 이들에게 말하겠다는 다짐이다. 그 많던 사과를 누가 다 깎았는지 아느냐고.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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