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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가장 쉬운 창조의 선물

입력
2016.09.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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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명 기타리스트가 TV에서 과거를 고백하는 것을 보았다. 가을과 유독 어울리는 주옥같은 그의 노래들은 사람들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그의 노래는 남의 인생을 참조하지 않은 100% 그의 이야기였다. 몇십 년을 기다려 온 아내와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 단지 그 내면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 그는 평생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군 시절 처음 읽은 책이다. 릴케는 어릴 적부터 유독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했다. 그는 15세 때 육군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시작(詩作)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주로 영감을 받은 것이 편지와 여행이었다. 유럽 각지로의 여행은 고독감을 더해 주었고, 그는 거의 매일 편지를 쓰며 창작 연습을 하였다.

어느 날 한 습작생의 편지 한 통을 받게 된 릴케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낸다. “당신은 당신의 시가 좋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제발 그런 일은 이제 그만두십시오. 당신 바깥의 외부로부터 그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지기 바랍니다. 내 안의 고독을 응시하십시오.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그것에서 태어납니다.”

릴케의 이 말은 동서고금 창작을 중요시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었다. 남들에 대한 의존이 아닌 자신 내면의 고독을 응시하기.

지금도 대학 도서관에는 수많은 책이 카피 되고 있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의 90%는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퍼온 것들일 것이다. 나 역시 글을 쓸 때 항상 무언가를 참조하려는 유혹을 버리기가 힘들다. 물론 뉴턴의 말처럼, 인류의 발전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설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는 남들을 따라 똑같은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고 생산하기보다는 소비하는 쪽이 더 익숙하다. 창조가 아니라 모방을 위해, 가치 창출이 아니라 지불을 위해, 대안 탐색보다는 단순 비판이 더 익숙한 시대이다. 그렇게 소비자라는 정체성이 나를 대체한다.

‘아! 정말로 하나님 / 빛이 있어라 하시니 거기 빛이 있더이까. / 모래알만 한 별이라도 좋으니 /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이어령,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 中

결국 인간은 작은 빛 하나도 창조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대신 창조주가 준 가장 쉬운 창조의 선물이 있다.

바로 ‘글’이다.

어느 연구 결과에서는 글을 쓰며 몰입할 때 희열이 섹스보다도 더 크다고 한다. 글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대중적이다. 정치 경제 문화의 긴 역사 속에서 축적된 글은 인류 사회의 혁신과 진보를 가져왔다.

꼭 전문 작가여야지만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페이스북과 블로그, 스마트폰에 누구든지 언제든지 나만의 글을 남길 수 있는 시대이다.

퇴사 후 한동안 내가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마음속 남들이 그래야만 한다는 것들이 가라앉고 가만히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글’이었다.

3개월간 100권의 책을 읽고 밤낮으로 글을 썼다. 카카오 브런치에 올리면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또 감사하게도 지금 이렇게 칼럼을 쓸 기회가 주어지게 되었다.

매일 소비하고 매일 폐기하는 시대. 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호모 콘스무스 (Homo Consumus)’의 시대에서, 단지 소비자라는 정체성만이 나를 증명하는 전부여야 할까.

우리는 분명 그 이상, 무언가를 창조하고 만드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존재로 태어났다.

자, 지금부터 스마트폰이나 노트에 아무 글이라도 써 보자.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가장 쉬운 창조의 선물을 만끽할 계절이 왔으니.

장수한 퇴사학교 창립자 & 대표, ‘퇴사의 추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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