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9월 20일
블루머(Bloomers)라는 여성 하의가 1850년대 미국서 유행했다. 밑단을 고무로 여민 일종의 바지로 무릎 길이 치마 속에 입는 옷. 당시에는 터키시 드레스, 혹은 개량 드레스라 불렸다. 그 옷을 처음 만들어 입은 이가 엘리자베스 스미스 밀러(Elizabeth Smith Miller)였다.
미국 여성들의 참정권 운동이 불붙기 시작한 게 1840년대 중반이다.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수전 앤서니 등의 1848년 세네카폴스 여성회의를 비롯, 기혼여성의 재산권 보장 입법청원 등이 그 무렵 일이었다. 생활 개혁도 병행됐는데, 그들이 가장 못마땅해 했던 게 빅토리아 풍의 드레스였다. 코르셋과 가죽 끈으로 졸라맨 허리와 복부, 무겁고 치렁치렁한 드레스의 형을 잡아주던 패티코트. 과장일지 모르지만, 그 옷 때문에 복부 장기의 위치와 발육이 비정상적일 정도여서 의대 해부학 교실에서조차 여성들의 시신은 실습용으로 마다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스탠턴 같은 맹렬한 페미니스트들조차 벗어 던질 엄두를 못 내던 관습적인 외부 활동용 의상이었다.
1849년 10월 당시 인기 건강 잡지 ‘워터 큐어’가 건강 문제를 들어 여성 드레스의 개선을 촉구하는 기사를 실었고,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 시도는 보건과 실용의 의미 외에 상징적ㆍ이념적 의미가 결합된 것들이었다. 스탠턴 등과 함께 활동하던 여성인권운동가 밀러는 1851년 2월 자신이 만든 블루머를 입고, 당시 ‘릴리(Lily)’라는 여성 잡지를 간행하던 아멜리아 블루머(Amelia Bloomer)를 만났고, 블루머가 그 옷을 잡지에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당시 미국의 일간지들은 그 옷을 ‘블루머 드레스’라 불렀다.
블루머는 하지만 지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실용적인 가치보다 상징적 의미가 부각되면서 교회 등 보수적인 사회의 타매가 거셌고, 페미니스트 진영 안에서도 블루머가 바지와 유사한 점을 들어 남성적 권위의 모방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다. 참정권 운동 자체보다 블루머 패션이 화제의 중심에 놓이는 등 본말이 전도됐다는 ‘반성’도 있었다고 한다.
블루머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남북전쟁 시기 야전 병원 등에서 블루머의 실용성이 재조명되고 테니스 사이클링 등 스포츠를 여성들이 즐기기 시작한 1890년대부터였다. 엘리자베스 밀러는 1822년 9월 20일 태어나 1911년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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