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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과 잇단 평화협상… 내전 상처에 새살 ‘화해의 시대’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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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과 잇단 평화협상… 내전 상처에 새살 ‘화해의 시대’ 연다

입력
2016.09.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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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정부ㆍFARC 평화협정

필리핀 공산군 무기한 휴전 합의

미얀마서도 17개 단체 평화협상

“좌익 이념 실현 허황” 인식 공유

정부군 압박에 세력 유지 힘들어

반군 생존 열어주며 마음 잡아

수십 년 고립 탓 사회 복귀 차질

소수민족 통합 가능성에 의구심

정부ㆍ군부 뿌리깊은 불신도 문제

지난달 16일 콜롬비아 푸투마요의 게릴라 캠프에서 촬영한 군복에서 사복으로 갈아 입은 콜롬비아 무장조직인 콜롬비아혁명군( FARC) 제49전선의 여성게릴라 조직원들의 모습. AP 연합뉴스
지난달 16일 콜롬비아 푸투마요의 게릴라 캠프에서 촬영한 군복에서 사복으로 갈아 입은 콜롬비아 무장조직인 콜롬비아혁명군( FARC) 제49전선의 여성게릴라 조직원들의 모습. AP 연합뉴스

수 십 년간 내전을 겪었던 콜롬비아와 필리핀, 미얀마 등 국가들에서 잇단 평화협상이 진척되며 ‘화해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반군 세력이 세월이 갈수록 쇠퇴하는 가운데 새로 출범한 정권들이 국가재건을 목표로 적극적 양보를 통해 반군들의 조건을 수용하는 과감한 행보를 벌이면서다. 하지만 수 십 년간 패였던 상처의 골을 평화협상을 통해 단시간에 메우기에는 현실적 어려움이 상당하고 반군과의 화해에 부정적인 군부 기득권층 반발과 반군세력의 사회적 융합 문제 등 장애물들이 첩첩산중으로 남아있어 화해의 시대를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콜롬비아와 필리핀, 미얀마 등 잇단 평화협정

콜롬비아 정부와 좌익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는 지난달 26일 반세기 넘게 지속돼온 내전을 끝내기 위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쿠바혁명에 자극을 받은 콜롬비아 농민군 지도자들이 1964년 좌익정부 수립을 목표로 FARC를 조직하며 시작된 콜롬비아 내전은 남미에서 가장 오래된 이념 전쟁이다. 하지만 FARC가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980년대부터 마약조직과 결탁해 아마존과 푸투마요 등 콜롬비아 남부와 동부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이념의 색채는 다소 흐릿해졌다. 도리어 FARC가 지배하던 지역 대부분은 사회기반 시설 붕괴와 교육과 의료 등의 기회 박탈, 실업 증가 등으로 황폐화됐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평화협상 체결로 사회경제적 안정성이 확보되며 해외 투자자본의 유입 등 경제적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평화협상을 통해 역사적 전기를 만들려는 국가는 콜롬비아뿐만이 아니다. 필리핀에서도 정부와 공산주의 반군 신인민군(NPA)은 지난달 26일 50년간 이어져온 내전을 끝내기 위한 사전 절차로 무기한 휴전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1969년 설립된 필리핀 공산당의 군사조직인 NPA는 지난 50년 동안 토지개혁과 소수 지배계층의 권력독점 타파 등을 목표로 무장 게릴라 활동을 벌여왔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최근 NPA 대표를 직접 만나 평화협상을 진척시키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NPA 창립자로 유럽에 망명 중인 호세 마리아 시손이 조만간 필리핀으로 귀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미얀마 정부는 지난달 31일 네피도에서 70년간 이어져온 내전을 끝내기 위해 샨족 무장단체인 민족민주연합군(NDA) 등 17개 단체가 참여하는 평화협상을 개최했다. AFP통신은 “회의에서 실질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았고 일부 반군단체들이 발언권 박탈에 분노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등 협상 자체에 큰 진전은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회의는 분쟁 당사자들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수년이 걸릴 수 있는 평화 프로세스 구축의 출발로 여겨진다”고 평가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가 이제는 사실상 최고 실권자가 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왼쪽)이 1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가 이제는 사실상 최고 실권자가 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왼쪽)이 1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집무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만나 환하게 웃고 있다. AP 연합뉴스

정부 교체와 반군 세력 위축으로 화해

각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면서 충돌의 당사자가 사라지는 한편 반군 세력은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 현실 등이 화해의 시대를 개막하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콜롬비아의 경우, 정부와 FARC는 1982년부터 평화회담을 시작했지만 그간 결실을 맺지 못했다. 1982년 취임한 잉그리드 베탕크루 대통령은 당시 무장 게릴라에 대한 대대적 사면조치로 물꼬를 텄지만 상호불신 속에 한계에 부딪혔고, 2002년에는 반군에 대한 강경론을 주장한 우라베 정권이 들어서면서 오히려 무력분쟁이 심화됐다. 하지만 2010년 취임한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국가재건을 목표로 2012년 10월 FARC와 협상개시를 공식 선언했고, 2014년 대선에서 연임 성공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자 지난해 9월 전격적으로 양측 수뇌부 간 첫 회담을 이끌어냈다. 사실상 평화협상 체결의 산파 역할을 한 것이다.

미얀마와 필리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 3월 출범한 미얀마 정부의 실질적 최고 실권자인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 겸 외무장관은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내전 종식을 내걸었다. 수치는 옥과 주석 등 천연자원이 풍부히 매장된 분쟁지역의 개발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치는 부친인 미얀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유지인 ‘사회 통합’을 완수하려 하다는 관측이다. 아웅산 장군은 1947년 소수민족들에게 자치권을 주는 ‘팡롱 협약’ 체결을 통해 국가 통합을 추진했지만 본궤도에 올리지도 못한 채 암살당하고 말았다. 필리핀의 경우, 두테르테 대통령이 올해 6월 취임 직후 2004년 체포한 필리핀 공산당의 베니토 티암손 총재와 윌마 티암손 사무총장 등 반군 20여명을 가석방하는 제스처로 화해의 물꼬를 텄다.

반군 세력이 점차 뒤안길로 내몰리는 현실적 이유도 다분하다. 콜롬비아 반군인 FARC는 1980년대 마약거래 등으로 약 1만7,000명까지 세력이 커졌다가 90년대 말 미국 정부의 대대적인 콜롬비아 마약 단속 정책으로 현재 약 7,000명까지 줄어들었고, 필리핀에서도 80년대 약 2만6,000명에 달했던 공산 반군 NPA는 현재 약 4,000명으로 감소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세월이 흐르면서 반군들의 좌익 이념 실현이 허황된 목표라는 인식이 커졌고 각국 정부의 대대적 압박으로 세력 유지가 어려워졌다”며 “여기에 평화협상을 위한 반군단체의 요구 조건을 각국 정부들이 전격 수용하면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반군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고 지적했다.

평화협상에서 사회통합까지 머나먼 길

하지만 평화협상이 곧바로 사회통합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콜롬비아 FARC의 경우, 1984년에도 정부와 휴전하고 합법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사회적 통합에 나서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콜롬비아 우익 민병대들이 FARC 쪽 정당의 대선후보는 물론 당원 3,000여명을 살해하는 잔인한 보복에 나섰기 때문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이번에도 FARC의 정치 참여를 위해 상ㆍ하원 5석씩 모두 10자리를 향후 두 차례의 임기 동안 보장하기로 했지만 우익 세력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오랫동안 밀림 지역에서 고립된 게릴라 생활을 해온 FARC 조직원들의 사회 복귀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NYT는 “FARC 조직원들은 어린 시절부터 게릴라 기지에서 살아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미얀마에서도 공식적으로 135개에 달하는 소수민족 통합이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이 많다. 미얀마에서는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 고문과 강간, 대량 살상 등이 수 십 년간 이어지면서 미얀마 군부에 대한 불신과 반감이 여전히 거세다. 실제 미얀마 정부군은 지난달 28일 평화협상 회의를 앞두고도 북부 카친주와 샨주에서 반군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다. 또한 미얀마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바마르족 중심의 미얀마 정부에 대한 경계도 소수민족들 사이에서는 여전하다. WP는 필리핀의 평화협상과 관련해서는 “사실상 두테르테 대통령의 의중에 달렸다”며 “두테르테 대통령이 다혈질인 만큼 평화협상이 언제 중단될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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