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지내며 소설을 쓸 때에는 매일매일 집 앞 조그만 카페엘 갔다. 노트북을 켜놓고 커피를 두세 잔쯤 연달아 마셨는데, 터키 출신 주인아저씨는 커피잔을 놓아주며 종종 내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그가 물었다. “이건 어느 나라 글씨야?” “이건 한국말.” 내가 대답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너희 나라 글씨는 그림 같네. 아랍어만큼이나 예쁘구나.” 그러고 보니 노트북 속 내 어지러운 글자들이 그림처럼 예뻐 보였다. 그래서 그 말이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지낼 때에는 낭독회가 자주 있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낭독회에 피로를 느낄 무렵 그 도시의 도서관에서 한국 교민들을 위한 작은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마음껏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나는 그날 짧은 에세이를 세 편이나 읽어주었다. 온통 한국인들 속에 단 한 명 외국인 손님이 끼었다. 아이오와대학교의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는 일본인 지아키였다. 낭독회가 끝난 뒤 지아키가 다가왔다. “정말 좋았어. 한국말로 낭독을 하니까 꼭 음악을 듣는 것 같았거든.”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그녀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좀 코끝이 찡해졌다. 내 나라의 말이 음악 같았다니. 그러고 보면 나는, 그림처럼 예쁜 한글과 음악처럼 고운 한국말을 쓰는 사람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내가 막 예뻐진 것도 같고 고와진 것도 같았다. 그래서 혼자 우쭐우쭐, 숙소로 돌아오는 어두운 길이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