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돌지 않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소득이 늘지 않는 가계는 부채의 이자 부담 등으로 소비 여력이 없고 기업은 경기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에 나서지 않아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춰도 자금이 돌면서 신용을 창출해내는 효과가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19일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지난 7월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0.3회로 집계돼 6월 22.3회보다 2회나 떨어졌다.
이로써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005년 2월 18.1회를 기록한 이후 11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다. 예금회전율은 월간 예금지급액을 예금의 평균잔액으로 나눈 것이다. 회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은행에 맡긴 예금을 인출해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 작년 한 해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4.3회로 2006년 23.6회를 기록한 이후 9년 만에 최저였다. 2010년 34.8회였던 회전율은 2011년 34.2회, 2012년 32.7회, 2013년 28.9회, 2014년 26.7회 등 5년째 하락 행진을 지속했다.
예금회전율의 하락은 한국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낮추고 시중에 유동성을 확대 공급해도 주로 은행에 예금할 뿐 이를 꺼내 쓰지 않는 현상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7월 시중통화량(M2·광의통화)은 2,352조2,451억원(평잔·원계열)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6.9% 증가했다.
예금은행의 총예금(말잔)은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해 6월 1,200조9,007억원으로 1,200조원 선을 돌파했다. 하지만 통화 유통 속도는 올 1분기 0.71에 그쳐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렀고 본원통화의 통화량 창출 효과인 통화 승수도 지난 4월 16.9로 역대 최저였다.
한은은 작년 말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기준금리 이하로 완화된 금융여건이 자산시장 이외의 실물경제를 개선하는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고 분석했다. 민간 소비 증가율이 낮은 수준이고 설비투자 증가세도 제한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다.
인구구조 변화, 높은 가계부채 비율 등 구조적 제약요인과 신흥시장국 경제의 성장 둔화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 등으로 금리 인하의 실물경제 파급 효과가 과거보다 약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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