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분단문학의 거목 이호철 씨가 뇌종양으로 18일 오후 7시 32분 서울 은평구 시립서북병원에서 별세했다. 84세.
1932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6·25 전쟁으로 인한 민족분단의 비극과 이산가족 문제에 천착해온 대표적 분단작가이자 월남작가다. 원산중학교를 졸업한 후 원산고등학교에 진학, 교내 문학서클의 책임자로 활동했으나, 3학년이던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에 동원됐다. 국군의 포로가 되어 북송되던 중 풀려난 고인은 그 해 12월 혈혈단신 월남, 부산에서 부두노동자, 미군부대 경비원 등으로 일했다.
1955년 단편소설 '타향'으로 등단한 고인은 이후 60여 년간 장편소설 ‘소시민’, ‘서울은 만원이다’, ‘남풍북풍’, ‘그 겨울의 긴 계곡’, ‘재미있는 세상’ 등과 연작소설 ‘남녘사람 북녘사람’ 등 수십 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1950년대 초기작들이 전쟁의 상흔을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며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그려냈다면, 1960년대 이후엔 남북분단 문제를 비롯해 남쪽 소시민들의 삶을 날카로운 역사감각으로 사실적으로 묘파하며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줬다. 분단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월남민의 삶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소시민’ 이후 사실성 강한 풍자문학으로 선회한 고인의 작품세계는 평생을 일관한 전쟁의 비극과 분단의 문제를 통해 한국문학사에 분단문학의 영토를 확고히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운영위원으로 유신독재 반대투쟁에 나섰다가 옥고를 치르는 등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섰다. 유신헌법 개헌 반대 서명을 주도했다가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혐의로 투옥되기도 했다. 이 사건은 법원의 재심으로 2011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자유실천문인협회 대표, 민족문학작가회의 고문 등을 지냈으며,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3·1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은 작품이 번역돼 호평 받은 독일과 헝가리,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초청 낭독회를 여는 등 분단의 현실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데도 힘썼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4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민자 여사와 딸 윤정 씨가 있다. 장지는 광주광역시 국립 5·18 민주묘지다. (02)2227-7580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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