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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지진의 응답자들

입력
2016.09.18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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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19에 전화를 걸면 빨리 달려올 수 있는,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소방서에서 받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각 시ㆍ도청에 마련된 소방본부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습니다. 신고를 받은 수보(전화접수)대원들은 GPS로 신고 위치를 확인한 후, 각 소방서의 동원 가능 인력과 장비를 판단해 적절한 소방서에 출동지령을 내립니다. 이 방법은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면서 효율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근무하는 충남소방본부에선 수보대원들이 3교대로 일하며, 상시 10여 명의 대원이 충청남도 전역에서 걸려온 신고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경상북도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지진은 다행히 심한 인명피해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전국 각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시 상황실에 의료지도 의사로 앉아 있던 저는 제법 흔들리는 진동을 느꼈습니다. 모니터와 책상 위의 집기가 조금씩 떨리더군요. 같이 앉아 있던 수보 대원들은 저와 마찬가지로 진동을 느꼈고, 상황실의 분위기도 전국에 있는 다른 건물 내부처럼 조금 술렁거렸습니다.

“뭐여 이거. 지진인겨.”

우왕좌왕하는 우리 앞에 있던 모니터엔 곧 지진 속보가 떠올랐습니다. 실제 지진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과, 그래도 심하지 않은 진동이었으므로 별다른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겠다는 안도감이 상황실에 교차했습니다. 그리곤, 별안간 상황실의 분위기는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긴장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재난 경험이 별로 없었으므로 대원들이 왜 긴장하는지 조금 어리둥절했습니다.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할만한 재난은 아니었는데요. 그러자 곧 상황실의 온 전화가 지진 관련 신고로 동시에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했습니다. 이 상황실에 쏟아진 지진 관련 신고의 규모는 통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평균 하루 2,000여 통의 전화를 받는 상황실에 하루 3,630통의 전화가 쏟아졌습니다. 특별히 지진이 발생한 저녁 7시 44분부터 약 30분간 10명이 약 800통의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 통화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저기유. 여기가 XX시 XX군 XX면 XX리인디, 저희 집이 방금 에, 좀 흔들렸는디. 지….”

“네. 지진 맞습니다. 충남 전역이 다 흔들렸어요. 다친 분이 있나요?”

“없는디유.”

“그러면 저희도 상황 파악 중이니 신고하신 분은 언론 보도를 관찰하면서 일단 안전한 곳에 대피해 계시면 됩니다.”

“저, 네.”

이 20초짜리 전화가 30분에 800통이 쏟아졌던 겁니다. 그 후로도 500통이 더 쏟아져 충청남도의 이번 지진 민원은 1,300통으로 집계됩니다. 그리고 수보 대원들이 목이 쉬도록 응대하자 결국 충청남도의 지진 피해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자기가 살던 집이 흔들리자 119에 신고한 수많은 도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단 저조차도 많이 놀란 상황이었고, 당장 이것이 지진인지 아니면 어디 폭발인지도 알 길이 없어 불안했을 테니까요. 그 상황에서 공권력이 자신들을 지키고 있다는 믿음을 받고 싶었는데, 생각나는 곳은 119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이 쏟아진 전화들은 119에 대한 신뢰성의 증거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어제 유심히 지켜본 것은 마치 지진이 났노라고 거꾸로 재난본부에 알려주는 듯한 전화 1,300통을 받고 지진이 지진이 맞노라 반복해서 외쳐야 했던 수보대원들의 치열한 직업적인 세계를 엿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전까지 지진을 경험했다면, ‘아, 지진이 지나갔구나’라고 아주 평범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지진을 목격한다면 어느 가을밤 소란스러웠던 상황실과, 입안이 쩍쩍 말라갈 수보요원들을 떠올릴 겁니다. 그래서 그날 밤은 저에겐 타인의 전문적인 세계를 목격할 수 있었던 제법 빛나는 밤이었던 겁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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