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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밀정'을 보고 든 의문 몇가지

입력
2016.09.1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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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매우 많음(영화 본 사람만 읽기를 강력 권유).

영화 ‘밀정’이 초가을 극장가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지난 7일 개봉한 이 영화를 16일까지 484만6,849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 찾았습니다. 강력한 도전자 ‘매그니피센트 7’과 ‘벤허’ 등 할리우드 영화의 추격을 따돌리고 추석 연휴에도 일일 흥행순위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김지운 감독의 섬세한 연출, 송강호의 탁월한 연기, 친일과 항일의 경계에 섰던 인물을 통해 일제강점기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등이 흥행 요인으로 꼽힙니다. 잘 만들어진 영화가 관객들의 환대를 받으니 갈채를 보낼 일입니다. 조선인끼리 감시하고 서로 죽이도록 했던 일제의 악랄한 면모를 새삼 들춰내면서 여러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신념을 몸으로 행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뜨거운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밀정’은 여러 면에서 좋은 영화이나 이야기의 개연성이 약하다는 지적도 꽤 있습니다. 일제 앞잡이인 이정출(송강호)이 항일무장단체 의열단을 일망타진하려다 의열단에 포섭되고, 일제와 항일 운동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과정이 영화의 줄기를 이룹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변절했던 정출이 다시 마음이 흔들리고, 의열단의 무장 독립운동을 돕게 된다는 전개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말들이 있습니다. 악랄한 친일파와 올곧은 독립운동가라는 명확한 선악만을 주로 접해왔기에 정출의 갈지자 행보가 낯설 수는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이해가 가지 않고 의문을 품게 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밀정’을 보고든 의문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영화 '밀정'의 이정출은 의열단과 접촉한 뒤 친일과 항일 사이에서 인간적인 고뇌에 빠져든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밀정'의 이정출은 의열단과 접촉한 뒤 친일과 항일 사이에서 인간적인 고뇌에 빠져든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정출은 왜 일본 경찰이 됐나

이정출은 한때 독립운동을 했다가 동료들의 명단을 일제에 넘기고 일본 경찰이 됐습니다. “백성 팔아 먹는” 매국노인 것이지요. 정출이 왜 일제에 줄을 섰는지 동기는 불분명합니다. “(조선은)어차피 기울어진 배”라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했겠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일제 앞잡이가 됐다는 건 쉬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권력욕이든 금욕이든 남다른 출세 의지가 있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일제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라고 하나 큰 야망이 없지 않고서 일제 앞잡이가 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단순히 생계를 위해서라고 볼 수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정출이 변심한 이유는 매우 중요합니다. 영화 속 그의 여러 행동들의 동기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정출이 출세 욕망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면 아마 의열단의 젊은 리더 김우진(공유)의 회유와 은근한 협박에 그리 쉽게 굴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진 등이 도와달라는 읍소도 좀 더 매몰차게 거절했을 것입니다. 독립운동하던 시절의 친구 김장옥(박희순)의 자살을 목도하며 느꼈을 충격을 감안해도 정출의 변심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 앞잡이가 된 사람치고는 정출은 지나치다 싶게 연민과 동정심이 강한 인물입니다.

정출이 딱히 강한 출세욕을 지니지 않았고, 일제의 신뢰가 그저 감사하거나, 어떤 협박에 의해 경찰이 됐다면 그는 매번 마음이 흔들릴 만도 합니다. 하지만 정출이 일본 경찰이 된 동기치고는 좀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의열단을 잡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영화 전반부에 비춰지니까요.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의 표현대로 “그런 사람들은 쉽게 변하니” 정출이 일본 경찰이면서도 의열단에 마음이 기울게 된 걸까요. 아니면 “남자는 자기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 충성하기”(히가시 부장)때문 일까요.

이정출은 김우진을 역이용해 의열단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상하이에 갔다가 오히려 의열단에 포섭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정출은 김우진을 역이용해 의열단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상하이에 갔다가 오히려 의열단에 포섭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정출은 왜 김우진의 계략에 쉽게 말려드나

이정출은 일본인 경찰 상사인 히가시(쓰루미 신고) 부장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자신에 대한 그의 평가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히가시가 젊은 조선인 일본 경찰 하시모토(엄태구)를 붙여주자 정출은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일제에 무조건적 충성심을 보이는 하시모토와 경쟁 관계에 놓인 동시에 하시모토의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히가시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자연스레 들게 됩니다. 정출은 하시모토와의 미묘한 관계를 염두에 두며 정채산을 잡기 위해 상하이로 향합니다. 하시모토보다 먼저 공을 세워야 하면서도 하시모토의 감시를 피해야 합니다. 여러모로 민감한 상황에서 김우진의 꾀임에 빠져 정채산을 만나고 이중첩자 제안을 받습니다. 말술을 마시며 정으로 동포를 대하는 정채산의 대인적인 풍모, 독립운동가에 대한 부채의식, 독립운동가들과 호형호제하며 밤을 보냈다는 밀고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작용해 정출의 마음이 움직인 것으로 영화는 묘사합니다. 공에 눈이 멀었고, 우진에게 대한 경계가 흐려졌다고 하나 정출이 우진의 계략에 말려들어가는 과정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정출이 홀로 작전을 수행 중에 우진이 의열단 핵심 단원임을 알면서도 아침을 먹자는 그의 말에 의열단 본거지를 별다른 의심 없이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정출(오른쪽)과 김우진(왼쪽)이 열차 안에서 접촉을 시도하자 하시모토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두 사람을 찾아온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정출(오른쪽)과 김우진(왼쪽)이 열차 안에서 접촉을 시도하자 하시모토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두 사람을 찾아온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정출은 의열단 속 밀정을 왜 두려워하지 않나

이정출은 폭탄을 경성으로 옮기려는 김우진을 돕기 위해 하시모토에게 가짜 신분증 제조를 부탁하고 우진 일행의 동선도 거짓으로 알려줍니다. 하지만 하시모토의 정보원은 우진의 동료 중 한 명이자 밀정인 조회령(신성록)에게서 정보를 얻어 옵니다. 정출은 밀정의 존재와 함께 하시모토 일행이 열차 안을 검색하고 있음을 우진에게 알립니다. 위기에 처한 우진은 내부의 밀정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 지 골몰합니다. 정작 정출은 우진을 돕는 데만 온 신경을 쏟습니다. 회령이 자신과 정채산의 만남, 우진과의 밀약 등을 알고 있는 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습니다. 엄혹한 시절 생존본능에 따라 독립운동가 대신 일제 경찰을 택한 정출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답지 않은 행동을 하는 셈입니다. 자신이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먼저 나서서 우진 일행을 색출해야 하는 게 정출다운 행동이지 않을까요.

하시모토의 수족들은 비루(맥주)나 한 잔 마시겠다며 식당 칸으로 향하는 정출을 경멸과 의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마치 ‘너의 이중 행각은 우리가 다 알고 있다’는 표정들입니다. 하시모토는 우진과 정출의 만남을 이미 예견하고 있다는 듯 곧 식당 칸으로 향합니다. 회령이 하시모토 일행에게 어떤 정보를 줬을 수도 있다는 암시로 해석되는 장면들입니다.

'밀정'의 여성 의열단원 연계순은 일본 경찰이 신분을 파악하지 못한 인물로 나온다. 일본 앞잡이 하시모토는 중국 상하이에서 계순과 마주치고도 그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밀정'의 여성 의열단원 연계순은 일본 경찰이 신분을 파악하지 못한 인물로 나온다. 일본 앞잡이 하시모토는 중국 상하이에서 계순과 마주치고도 그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일본 경찰은 왜 연계순만 연행해 갔나

하시모토는 열차가 출발하기 전 경성의 히가시 부장에게 상하이에서의 진행 상황을 보고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김우진 일행이 폭탄을 숨긴 채 열차를 탔다는 사실을 알리고, 경성역에서 이들을 잡으려는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아니면 정출이 열차에서 뛰어내린 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히가시에게 우진 일행이 경성역으로 향한다고 보고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우진 등이 경성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본 경찰들이 삼엄한 경계와 검문검색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들은 연계순의 사진을 들고 우진 일행을 체포하려고 합니다. 영화는 앞부분에서 다른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계순의 신분은 파악이 되지 않는다는 정출의 보고를 다룹니다. 우진 등의 신분(그의 용모 등을 포함해)은 이미 알고 있다는 암시입니다. 아무리 가짜 신분증을 소지했다고 해도 우진은 검색을 별 어려움 없이 통과하고, 계순은 우진이 찍은 사진 때문에 일본 경찰에게 들통납니다. 우진과 계순의 비극적인 인연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적 장치라 할 수 있지만 역시나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일본 경찰은 총격전 끝에 계순만 잡고 경성역을 급히 떠납니다. 히가시는 계순을 잡은 뒤 “미끼를 잡았다”고 말합니다. 정채산의 행방을 아는 인물로 지목된 계순을 추궁하면 의열단을 궤멸시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 여럿이 경성으로 폭탄을 숨겨 들어온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경성역에서 계순만 연행하고 작전을 마친 것은 선뜻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정출의 일본인 경찰 상사인 히가시 부장은 조선인 경찰을 의심하고 조선일 경찰들을 경쟁시켜 목적을 달성하는 간악한 인물로 묘사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이정출의 일본인 경찰 상사인 히가시 부장은 조선인 경찰을 의심하고 조선일 경찰들을 경쟁시켜 목적을 달성하는 간악한 인물로 묘사된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일본 경찰은 왜 이정출을 감시하지 않았나

히가시는 상하이에서 돌아온 이정출에게 의혹의 눈길을 보냅니다. 하시모토 일행이 몰살 당하고 정출은 가벼운 상처만 입고 도망쳐 온 정황에 동의할 수 없는 표정입니다. 이미 하시모토를 통해 정출을 감시하고자 했던 히가시는 정출의 마음을 파악하고자 잔혹한 행위를 강요합니다. 연계순을 잔인하게 고문하도록 지시합니다. 김우진의 행방을 파악한 뒤에는 밀정을 통해 정출을 함정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히가시의 계략으로 체포된 정출은 법정에서 무고를 주장합니다. 자신은 의열단을 잡기 위해 의열단과 접촉을 시도했고, 그 와중에 독립운동을 도왔다는 오해를 사게 됐다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정출은 결국 풀려나고 이후 적극적으로 항일의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정출이 석방된 뒤 히가시의 행동은 영 의문투성이입니다. 간악한 히가시는 이후 이상하게도 정출에 대한 경계와 감시를 풀어버린 듯합니다. 히가시도 정출의 무고에 동의한 것일까요. 인권을 그리 존중하지 않던 야만의 시절 히가시는 법정의 판결을 겸허히 받아들인 걸까요. 정출은 폭탄 일부를 자신의 집 마루바닥 밑에 감춰두고 여러 거사를 꾀합니다. 히가시가 오래 전부터 의심했고, 열차 사건 뒤에는 아예 믿지 못할 인물이 돼버린 정출의 행동은 감옥에서 나온 뒤 의외로 자유롭습니다. 폭탄의 행방을 찾는데 부심했던 일본 경찰이 독립운동가와 내통한 의혹이 있는 정출의 집에서 폭탄을 찾아내지 못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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