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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귤 공화국', 새콤달콤 탐스러운 제주가 익어간다

입력
2016.09.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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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하귤ㆍ풋귤 가을부턴 황금향

한라봉은 연말부터 제일 늦은 건 천혜향

요즈음 블루베리나 애플망고와 같은 아열대 과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서귀포에서 가장 대표적인 아열대 과일은 감귤이다. 서귀포시 신효동 월라봉 기슭에 자리잡은 감귤박물관에는 감귤의 유래와 역사, 문화 등이 체험 마당과 함께 알기 쉽게 전시되어 있는데 재래 감귤은 삼한 시대부터 유래를 찾아 볼 수 있다고 한다. ‘맛의 방주 프로젝트’라 하여 소멸 위기에 처한 음식과 식재료, 종자 등을 보존하는 세계적인 사업에 제주도에서는 재래 감귤인 ‘산물’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만큼 제주 감귤도 많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감귤은 제주시에서도 재배는 이루어지나 기후 여건 상 서귀포 감귤을 더 알아주며 위미, 효돈, 중문 지역은 당도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제주도에서 흔히 심는 감귤은 온주귤인데 1911년 프랑스인 에밀 다께 신부에 의해 서귀포에 전래됐다고 하며 이중섭 거리 아래에 위치한 서귀포 성당에는 다께 신부의 자취가 아직 남아 있고 얼마 전에는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문화 행사가 서귀포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기도 했다.

풋귤.
풋귤.

한 여름 가장 먼저 수확하는 감귤은 하귤과 풋귤이다. 하귤은 수입 과일인 ‘자몽’만한 크기로 서귀포 시내 가로수로도 심어져 있는데 관광객들이 탐스러워 보이는 과육을 참지 못하고 따먹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워낙 신맛이 강해 날 걸로는 섭취가 어려우며 설탕에 절여 하귤청을 만들거나 잼으로 만들어야 먹을 수 있다. 서귀포 여행 시 가로수로 보이는 나무에 달린 대형 귤은 드시지 않는 것이 좋다. 풋귤도 재래 감귤 품종인데 덜 익어 초록색을 띤 감귤을 청귤이라고 판매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여 올해부터는 소비자 혼란 등을 우려해 ‘청귤’ 명칭을 ‘풋귤’로 변경했으며, 매년 8월31일까지만 출하토록 했다. 풋귤은 덜 익은 감귤과 달리 과육이 오렌지 색이 아닌 노란색으로 절제된 상큼함을 지닌 독특한 맛을 내어 청량감을 준다. 감귤에 익숙한 분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매력적인 맛을 지닌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조생종 감귤로는 ‘보졸레 누보 와인’처럼 황금향이 가장 먼저 출하 된다. 이미 지난 8월 말부터 푸른 빛이 도는 황금향을 시장에서 볼 수 있는데 일찍 시장에 나와서 인지 숙성된 깊은 맛보다는 가볍고 상큼한 맛을 낸다.

급조생 노지 감귤은 추석 전 후부터 출하를 시작하는데 수확과 유통의 편의를 위해서 대략 80% 정도 익었을 때 열매를 따게 된다. 이 정도 감귤을 막 따서 먹으면 신맛이 강하고 단맛이 부족하게 되는데 며칠 동안 상온에 두었다가 먹으면 한결 낫다. 시중에 유통되는 감귤은 왁스 코팅 작업을 하여 껍질이 마르는 것을 방지하게 되는데 윤기가 많은 것은 진피처럼 껍질을 말려 사용할 수 없으니 유의해야 한다. 사실 껍질에 검은 점이 조금만 있어도 하품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왁스까지 바르며 상품성을 높이려 노력을 하지만 외관이 좋다고 해서 맛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파치를 더 선호하는 토박이들도 많다.

한라봉.
한라봉.

연말부터는 한라산을 닮은 한라봉이 출하되기 시작한다. 1990년 정도에 도입된 이 감귤은 베타카로틴보다 5~6배 이상 발암 물질을 억제하는 베타크립토잔틴이 함유되어 암 발생을 억지하며 관절염이나 류마티스에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과육이 무거워 농가에서는 낙과를 막기 위해 줄로 묶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나 일반 감귤에 비해 세배 정도 비싸게 팔 수 있어 마다하지 않는 것 같다.

감귤 중 가장 늦게 출하되는 품종은 천혜향이다. 한라봉 이후 개발된 최신 품종으로 과즙이 풍부하고 육즙이 부드러워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있으며 한라봉이나 황금향에 비해 껍질을 벗기기 쉬워 소비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한 알카리 식품으로 감기 예방과 피로 회복, 칼슘 흡수에 좋다고 한다.

미국의 한 연구소는 매일 한 컵의 감귤 주스를 마시는 사람의 경우 25%까지 심장 발작을 낮출 수 있고 혈관의 염증을 줄여 나쁜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신선한 감귤은 구입 후 바로 껍질을 벗겨 섭취하는 것이 좋다. 껍질을 벗긴 채 보관하면 비타민의 손실이 크다고 한다.

서귀포의 감귤 간식으로는 과즐이 가장 서민적인 먹거리이다. 밀가루에 감귤과즙, 물, 분유, 소금 등으로 반죽하여 밀대로 얇게 민 뒤 기름에 튀겨 시럽을 발라 쌀 튀밥을 뭍인 음식이다. 집에서 만들어 먹기에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제품을 사서 선물용으로도 사용하는데 개인적 친분이 있는 성산포 할머니나 신효의 과즐이 담백한 맛이 좋다.

서귀포에 이사오면서 감귤을 사먹은 사례는 사실 없다. 감귤을 돈 주고 사먹는 것은 서귀포 시민의 도리가 아니라는 말이 있을 만큼 감귤 인심이 후하기 때문이다. 파치의 경우 수확 철이 되면 웬만한 식당에선 입구 앞에 감귤을 놓아 누구나 집어 갈 수 있게 비치해 두기도 한다. 회사 사무실에도 직원들이 각자의 집에서 가져온 감귤을 바구니에 놓아 간식으로 맛 볼 수 있게 해 둔다. 한 번은 이웃집에서 감귤을 먹을 만큼 따가라며 농장으로 초대해 주셨는데 아내와 함께 한 시간 넘게 감귤을 가위로 땄는데도 나무 한 그루의 반 정도도 못 딸 만큼 주렁주렁 열린 것을 보고 놀란 경험이 있다. 물론 가위질이 서툰 영향도 있지만 그 날 이후로는 감귤을 다 따서 상자에 넣었으니 차로 실어가라고 연락을 주신다.

큰 회사나 공장 시설이 많지 않은 서귀포는 감귤 농사나 어업이 중요한 생계 수단이다. 연초부터 초봄까지 공천포의 어느 감귤 주스 회사의 정문에는 감귤을 팔려고 길게 줄 서 있는 농장 트럭을 출근길에 매일 보곤 한다. 오랜 애환이 서린 서귀포의 감귤이지만 여름 날씨가 아열대로 변하게 되면 이런 광경도 줄어들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쉽기도 하다. 서귀포 감귤도 지키고 농가에 새로운 소득 작물의 개발이 이루어지는 도약이 필요한 시기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제주도 농업의 초석이 되길 기대해 본다.

이재천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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