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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안방잔치에서 ‘펑마마’가 사라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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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안방잔치에서 ‘펑마마’가 사라진 이유

입력
2016.09.1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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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毛澤東)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언으로 ‘신(新)중국’이 출범한 이후 중국에선 영부인의 존재가 도드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서슬 퍼런 문화대혁명을 겪은 뒤 마오쩌둥의 부인 장칭(江靑)이 숙청당하면서 사실상 영부인의 존재에 대한 언급 자체가 금기시된 측면도 있을 테고 이른바 ‘죽(竹)의 장막’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중국의 권력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은 개혁ㆍ개방을 선언하고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영부인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 건 이전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덩샤오핑 부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덩샤오핑에 이어 중국의 최고 권좌를 차지한 장쩌민(江澤民)ㆍ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부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 역시 드물 겁니다. 국제무대에서 영부인들이 문화ㆍ예술분야를 중심으로 활발한 내조외교를 펼치는 서방과는 다른 이런 모습은 어쩌면 여전히 폐쇄적인 사회주의 체제의 한 단면으로 비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9월 전승절 기념행사 당시 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여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지난해 9월 전승절 기념행사 당시 시진핑 주석과 펑리위안 여사가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하지만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의 최고 권력자로 등극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은 국제무대에서 여느 서방국가의 영부인보다도 훨씬 ‘핫’(hot)한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중국인들도 이제는 세계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조명받는 영부인을 갖게 된 겁니다. 시 주석 집권 첫 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는 한 때 10여개 가까운 펑리위안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펑리위안은 그간 여러 국제무대에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베일에 가려졌던 중국 영부인의 존재를 확인하게 됐기 때문일까요, 펑리위안의 행보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뉴스’였습니다. 특히 그가 어느 행사에서 어떤 의상을 입었는지는 늘 화제였습니다. 서구인들에게는 다소간의 환상이 있기도 한 동양적인 아름다움에 포커스를 맞춘 펑리위안의 의상은 사실 ‘메이드 인 중국’의 세계화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만 어쨌든. 물론 여기에는 인민해방군에서 별까지 단 군인가수라는 독특한 그의 이력도 한 몫을 했을 겁니다.

중국에선 지도자의 행보 대부분이 계획에 따라 연출되고 관영매체들은 이를 의도된 방향으로 보도하곤 합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시 주석의 동정에 관해 기사를 쓰면 다른 관영매체들은 이를 전재하거나 약간만 바꾸는 식입니다. 아주 일사분란한 셈이죠. 웨이보를 비롯한 SNS에서 관련 소식이 전해지고 확산되는 경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펑리위안 관련 기사는 상당히 다른 패턴을 보였습니다. 외교무대에서 해외언론들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것 이상으로 중국에선 그와 관련한 소식이 빠르게 확산되곤 했습니다. 관영매체에서 1만큼 보도되면 인터넷과 SNS에서 회자되는 그에 대한 소식은 10만큼 될 정도입니다. 그가 인민해방군 가수로서 시 주석보다 훨씬 먼저 대중의 관심을 받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전문가들운 중국 젊은이들이 느끼는 자부심을 큰 이유로 분석합니다.

사실 요즘 중국 젊은이들은 개혁ㆍ개방 이후에 태어난 세대여서 사고나 행동이 꽤 자유롭습니다. 정치체제야 여전히 일당독재의 형식이지만 중국 사회 전체의 흐름은 웬만한 시장경제체제 국가와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상당히 앞서가는 분야도 많습니다. 중국의 현 세대 젊은이들에겐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영부인, 중국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영부인으로서의 펑리위안의 존재가 바로 그런 겁니다. 미국 대통령 부인과 패션 경쟁을 하고, 영국 여왕을 만나서도 우아함과 품격을 겨루고, 그가 입은 의상을 만든 중국인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하루 아침에 전 세계 패션업계의 핫 이슈가 되는 그런 영부인이기 때문입니다.

중국 네티즌들이 펑리위안을 ‘엄마’라는 뜻이 담긴 ‘펑마마’라고 자연스럽게 호칭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시진핑 아저씨를 뜻하는 ‘시다다’와 함께 펑마마 역시 사실은 정치적 의도가 담긴 조어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펑마마는 영부인에 대한 친근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펑마마 관련 소식이 정작 ‘안방잔치’ 때는 소홀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2014년 11월 중국이 APEC을 개최했을 때와 지난해 9월 전승절 기념행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펑리위안이 시 주석의 해외순방에 동행했을 때는 외신을 통해 전달되는 펑리위안 소식이 중국인들 스스로의 국내외 정보ㆍ통신망을 통해 훨씬 풍성해지곤 하는데, 도리어 중국이 주최하는 국제행사에선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 이유, 짐작이 되실 겁니다. 바로 중국의 최강무기 중 하나인 ‘검열’ 때문입니다. 중국에선 민감한 현안에 대한 통제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사실 우리로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인데 어쨌든 그렇습니다. 수도인 베이징에 가을부터 봄 사이에 스모그가 심각한 때가 비일비재한데, 심지어는 스모그 관련 얘기도 검열이 될 때가 있을 정도니까요.

이번에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 당국이 최고 수준의 온라인 검열을 실시하면서 펑리위안에 대한 온라인상의 관심도가 대폭 하락한 겁니다. 홍콩대학이 개발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일 G20 개막 이후 1만개 당 18개의 게시글이 검열됐다고 합니다. 지난해 8월 발생한 톈진 폭발사건 이후 가장 많은 수치입니다. 가장 많이 검열된 단어는 ‘국가’, ‘정상회의’, ‘공항’, ‘항저우’였습니다.

국제무대에서 화제가 됐던 펑리위안 여사의 패션.
국제무대에서 화제가 됐던 펑리위안 여사의 패션.

이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펑리위안의 스타일을 ‘칭찬’하는 글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외신들은 펑리위안이 G20 개막일에 입은 사파이어 블루색의 치파오에 큰 관심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펑리위안의 패션을 호평하는 등의 게시글을 중국 내에선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신화통신이나 CCTV 등 중국 주요 관영매체들은 웨이보 게시글의 댓글 작성 기능을 아예 막아놓기도 했습니다.

다소 어이 없는 이런 상황, 중국 정부는 언제 어느 순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중국의 웬만큼 큰 도시에선 노점에서도 모바일 결제가 가능합니다. 영부인의 소프트외교에 열광하는 지금의 중국의 젊은세대는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어떤 중국을 만들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베이징=양정대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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