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56) 감독은 1988년 ‘달콤한 신부들’로 데뷔해 30년 가까이 감독과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수 많은 영화를 만들면서 실패의 고배도 마셨고, 짜릿한 흥행의 단맛도 봤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미스터 맘마’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공공의 적’ ‘실미도’ ‘이끼’ 등 제목만 들어도 한국 영화의 흥행 계보를 보는 듯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가 ‘전설의 주먹’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영화는 ‘고산자, 대동여지도’(‘고산자’)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궤적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김정호의 삶은 그 동안 영화로 조명된 적이 없어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소설가 박범신의 ‘고산자’를 읽고 감명을 받아 영화화를 결정했다는 한다. 책 속에서 문자로 표현되던 한반도의 아름다운 절경이 실제로 스크린에 펼쳐지니 눈동자가 커질 수 밖에. 백두산부터 마라도, 독도까지 1년여 동안 한반도의 사계절을 담기 위해 전국 각지를 돌았을 강 감독의 고집과 열정이 아름답다. 최근 강 감독을 만나 지난 30년 동안 영화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의 집념을 들어봤다.
강산자, 강권택으로 불린 강우석
강 감독은 이번 영화 ‘고산자’를 찍으면서 얻은 별명이 있다.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에게 ‘강산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영화를 본 관객들에겐 ‘강권택’이라는 말도 들었다. 완성도 있는 장면을 위해 직접 리허설을 펼치고 엑스트라 400여 명을 진두지휘 하는 카리스마에 ‘고산자 김정호’에 빗대어 ‘강산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철쭉이 만개한 경남 합천의 황매산, 일출이 장관인 강원 양양의 동산포해수욕장, 아름다운 석양을 담은 전남 여수의 여자만, 신비로운 백두산 천지 등 한반도의 절경을 담는 열정은 거장 임권택 감독에 견줄 만 했다.
영화 초반부에 나오는 흥선대원군(유준상)의 어가행렬과 후반부 광화문 앞에 펼쳐진 대동여지도에 모여드는 군중의 모습은 보조출연자 400여명으로 장관을 완성했다. 이들에게 움직임 하나까지 지적하며 걸음걸이, 표정 등 연기지도를 했다. 400여명을 이끌고 황매산에 올라 찍은 어가행렬은 강 감독의 욕심이었다. 산이 아닌 그냥 평지에서 찍어도 되는 장면이었다. “그 많은 인원과 말, 물품 등을 모두 끌고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데만도 시간과 돈이 많이 들었다. 거기에 주연배우들뿐 아니라 보조출연자 한 명 한 명에도 신경을 써야 하니 보통 작업이 아니었다.”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강 감독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광화문 장면에선 아예 자신 옆에 “아무도 오지 마라”며 엄포를 놓았다. 농민과 걸어가는 소의 속도까지도 신경 써야 했다. “거의 탈진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영화라는 게 참으로 신성한 작업 아닌가. 온갖 정성을 기울여야만 완성도 있는 장면이 나오니 말이다. 김정호 선생이 지도를 만든 것이나 내가 영화를 만드는 정신이 어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인원을 동원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을 지나치게 소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강 감독은 촬영 시간을 엄수했다. “8시간 이상 촬영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오죽했으면 스태프들이 “우리는 공무원 팀”이라고 했을까. 오전 9시에 시작한 촬영은 오후 4시를 넘겨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낮과 밤 장면을 동시에 촬영하지 않았다. “찍을 때만큼은 미쳐라”며 배우와 스태프를 독려했다. 그래야만 집중력 있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하루의 촬영을 오후 3~4시를 넘지 않으려고 했다. 일단 내 자신이 8시간 이상 촬영하면 머리가 굳어져 이도 저도 안 되더라. ‘공공의 적’을 찍을 때는 한 스태프가 ‘학원에 다녀도 되느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원작자인 박범신 작가는 강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풍경에 신경 써달라. 글로는 한계에 부딪히니 강 감독이 영상으로 담아내 달라”고 했단다. 그래도 자신이 서질 않아 임권택 감독을 찾아 갔다. 임 감독은 “강 감독이 이제 그런 영화를 할 때가 됐다”며 “(한국적 영상을 위해)많이 기다려야 하고 힘들 것이다. 절대 포기하지 말고 정진해라”고 용기를 줬다고 한다.
박 작가와 임 감독의 조언을 듣고 한반도 지도를 펼쳤다는 강 감독은 백두산을 갈 계획부터 세웠다.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지역을 세 곳씩 찾으라고 제작부에 숙제도 냈다. 후보지 3곳이 정해지자 직접 내려가 땅에 카메라를 꽂았다. “금강산을 찍지 못한 아쉬움은 두고두고 남을 것 같다”고도 했다. 그는 스스로 “영상미를 좇는 감독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백두산, 울진, 부산, 마라도, 독도 등 산 넘고 물 건너 절경을 담는 데 성공했다. “고생했다는 느낌보다는 할 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더 강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원작에서 김정호는 독도가 아니라 간도를 간다. 하지만 나는 관객들이 독도를 기억하고 영화관을 나갔으면 했다. 솔직히 영화 속에서 백두산보다 독도가 더 좋다. 처음에는 자막도 넣지 않으려다가 ‘우산도’(독도)라는 자막을 넣었다. ‘고산자’를 찍으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내가 우리나라를 참으로 좋아하는구나’를. 풍광들을 찍으며 돌아다니니 참으로 좋은 나라더라.”
배우를 다그치는 감독 강우석
강 감독은 배우들을 불편(?)하게 하는 감독이다. 몸소 솔선수범을 다하는 스타일이라 배우들을 긴장하게 만든다. 달리 말하면 당근과 채찍을 적절하게 조율할 줄 아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는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기 전)내가 직접 리허설을 한다. 배우들이 보라고 직접 연기까지 해가면서 동선을 잡아준다”고 말했다. 감독이 직접 리허설을 진행하니 중견배우나 톱스타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차승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강 감독의 리허설 장면을 목격하고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어마어마한 연습을 하고 나타나더라. 그래서 대본이나 콘티를 꼭 2~3일 전에 줬다. 한 번은 현장에서 중간에 대사를 빼버리고 수정했더니 사색이 되더라. 대본을 정독해 연기를 갈고 닦아온 거였다. 그 뒤로는 현장에서 대본을 고치지 않았다.”
‘고산자’에서 김정호를 도와 대동여지도 목판 제작을 함께하는 바우 역의 김인권 역시 강 감독의 호된 연기 지도를 받았다. 영화 막바지 바우가 광화문 앞에서 대동여지도를 펼쳐 보이며 “대동여지도!”라고 고함을 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김인권에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강조하면서 압박을 가했다. 그랬더니 ‘죽을 것 같다’며 괴로워하더라. 그 장면은 김인권이 7~8번을 한 뒤에야 오케이 됐다. 신들린 놈처럼 막 춤을 추더라. 대사 톤도 이상하게 하고. 아마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언뜻 보면 배우들을 다그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연기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작전이 숨어 있다.
강 감독은 2010년 영화 ‘이끼’로 신들린 연기를 펼친 배우 유해진을 예로 들었다. ‘이끼’에서 마을주민 김덕천으로 출연한 유해진은 마지막에 이장과 자신이 저지른 비리를 발설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혼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롱 테이크(커트되지 않는 이어지는 긴 분량의 촬영기법)로 신들린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강 감독은 유해진을 불러 “해진아, 다른 것은 다 멋대로 해도 된다. 하지만 여기서 이 장면 제대로 못하면 넌 배우도 아니다”고 반 협박조로 다그쳤다. 유해진은 이 장면을 촬영하기 바로 전날 강 감독을 찾아와 “2주만 시간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2주 만에 돌아와 신들린 듯 긴 대사를 뽑아내던 그는 단 한 번에 오케이를 받아냈다. “나중에 들어보니 제주도의 허허벌판에서 혼자 연습하고 왔다고 하더라고. 영화에서 분량이 적고 캐릭터가 이상하더라도 배우들이 자신의 몫만 해주면 영화는 살게 돼 있다. 그럼에도 ‘영화가 잘 안 되어 욕을 먹더라도 배우들은 욕 먹지 않게 하자’는 게 내 신조다.”
쓴 소리 마다하지 않는 선배 강우석
강 감독은 영화계에서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선배들에게도 언론에도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간혹 이런 솔직함으로 난처한 상황에 몰리기도 하지만 그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며 넘겨 버린다. 요새는 젊은 감독들의 영화가 많아지는 것에 반가운 반면 “소재나 장르가 한정적”이라고 우려했다.
강 감독은 “후배들이 만드는 영화를 보면 매우 폭력적이다. ‘자극주의’에 매몰돼 있어 보기에 힘들다”고 꼬집었다. 그는 30~40대 젊은 감독들이 “사람을 쉽게 죽이는 등 잔혹하고 폭력적인 장면을 많이 그린다”며 “멜로나 로맨틱코미디 장르는 실종하고 전부 다 스릴러 장르를 하겠다고 한다. 영화판이 어쩌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충무로분위기가 지나치게 상업성만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새로운 것이 어색하지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한다”며 영화 ‘부산행’을 예로 들기도 했다.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됐지만, 그 전에 좀비 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데 더 높은 점수를 줬다.
“한 영화제에서 단편영화 심사위원을 하신 분이 말하길 요새 단편영화들도 사람을 다 죽이는 내용이라고 한다. 기겁했다. 영화가 너무 잔인하고 팍팍해지는 느낌이다. 관객들도 ‘한국영화들 왜 이렇게 무서워요?’하고 묻곤 한다. 힘들어서 못 보겠다고 하더라.”
28세라는 이른 나이에 당대 청춘스타 최재성과 최수지를 주연으로 한 로맨틱코미디 영화 ‘달콤한 신부들’로 데뷔한 강 감독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등으로 젊고 톡톡 튀는 감성을 스크린에 녹여냈다. 30대에는 안성기 박중훈 주연의 ‘투갑스’(1993)를 비롯해 ‘마누라 죽이기’(1994) 등을 연출했고, 40대는 ‘공공의 적’(2002) ‘실미도’(2003) 등으로 소재와 장르의 다양화를 추구했다. 그는 “내 사명감이라면 조금 더 따뜻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건 내 나이에 맞는 감수성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20대는 로맨틱코미디, 멜로나 방황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영화를 주로 찍었고, 30대가 되면서 ‘투캅스’ 시리즈 등으로 코미디 장르에 도전했다. 40대엔 사회고발 영화 ‘공공의 적’도 만들었다. 영화와 더불어 나 자신도 성숙해져 갔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영화들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게 너무 많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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