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통화정책에는 ‘충격과 공포’ 전략이 필요하다.”(2016년 8월 블룸버그통신)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바주카포 대신 소총을 쐈다.”(2015년 12월 영국 일간 가디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설명하는 데 갈수록 군사용어가 속출하고 있다.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금리 등 이례적인 통화정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이를 풀이하기 위한 은유적 표현으로 군사용어 사용이 급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지난달 블룸버그통신이 일본의 경제상황을 설명하면서 쓴 ‘충격과 공포’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사용한 전략의 명칭으로, 막강한 화력으로 큰 충격을 준 뒤 신속하게 승리를 따낸다는 뜻이다. 잃어버린 10년 등을 겪으며 성장이 정체된 일본 경제에 특단의 통화정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마크 하펠레 스위스 UBS은행 최고투자책임자가 “일본중앙은행(BOJ)은 경제에 큰 충격을 줘야 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드라기 ECB 총재가 내놓은 추가 경기부양책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가디언 등 영미권 언론들은 “드라기 총재가 바주카포 대신 소총을 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강력한 통화완화정책을 써 온 드라기 총재는 로켓을 퍼붓듯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뜻으로 바주카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는 모두 위기 극복을 위해 중앙은행이 내놓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과감한 군사 작전에 빗대 표현한 것으로, 미디어정보업체 ‘팩티바’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통화정책과 관련한 기사 등에 군사용어가 쓰인 횟수는 2010년 4,600건에서 지난해 7,300건으로 급증했다.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화력(1,485회)이었고, 바주카(968회), 총알(748회), 화약(476회) 등이 뒤를 이었다. 위기 상황에 처한 중앙은행들이 내놓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과감한 군사 작전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아예 군사용어를 즐겨 쓰는 중앙은행 총재들도 있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2008년 맺은 통화스와프 계약을 “내 바주카”라고 칭했고, 드라기 총재는 2012년 양적완화정책의 일환으로 도입한 저금리장기대출(LTRO) 프로그램을 “빅 버사”라고 설명했다. 빅 버사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사용한 초대형 곡사포를 일컫는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지난해 연설에서 “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순간 날 수 있는 능력은 영원히 없어진다”는 발언으로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를 표현해 ‘피터팬’으로 불린다.
WSJ은 수년 동안 이례적인 통화완화정책을 써온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 중앙은행들이 구체적인 추가 완화책을 내놓는 것 대신 실효성 없는 은유적 표현으로 강한 인상을 남기려 한다고 분석했다. 칼룸 피커링 베른버그방크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의 은유적 표현이 중앙은행이 현 시점에서 무엇인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만 높일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