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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를 일으켜 세워준 사람들

입력
2016.09.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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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 되돌이켜 보니, 나는 아팠다. 그 아픔에는 개인적인 연유도, 사회적인 이유도 있었다. 부모가 똑똑하고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었는데, 자기주장과 고집에 비해 사람 사이의 공감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줄 모르고 단정적인 자기 논리만 설파하려 들었다. 싫든 좋든, 유소년기에 나도 그런 모습들을 닮아갔다.

다른 한편으로 부모는 청교도적인 정의감도 물려주었다. 사회의 불의와 약자의 고통을 외면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너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사회의 올바름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맞서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때론 부조리가 만연한 환경에서 싸워야 했는데, 투쟁의 대상은 추상적인 환경이 아니라 눈앞의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청년 시절부터 마음이 아픈 일이 종종 생겼는데, 특히 관계에서 그러했다. 살면서 항상 내가 옳았을 리도 없겠거니와, 같은 이야기도 날 선 비판의식을 앞세워 유독 아프게 전달할 때가 많았다. 사실 그것은 내 상처의 무의식적 반영이었다. 자연히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는 숨죽이는 공기 입자 만큼의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많았다.

삶의 명분이 제아무리 좋아도, 사람들 사이에 공통의 가치를 함께 실천하거나 서로를 깊게 이해하고 포용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다. 삶 속에서 명분의 언어가 이익의 실존보다 앞설 때 말과 행동 사이의 부조리가 심해지는 것도 보았다. 창업하고 사업을 하면서 언행일치는 보다 쉬워지는 것도 같다. 일해서 돈을 벌고 그 잉여의 자원과 시간만큼 뭔가 사회적으로 의미 있을 일을 초연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각양각색의 사람을 대하는 것도 보다 편해졌다.

한창 젊었을 때 한결 더 너그럽고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젊음은 결핍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동료들이 각자의 결핍을 서로 기대어 가면서 여기까지 같이 왔고, 그새 나는 성정이 밝고 따뜻한 아내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 모두가 작은 기적이었고, 때때로 맞는 어려움에도 평범한 삶 속의 조용한 기적은 계속되고 있다고 느낀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한창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던 분들이 생각난다. 긴장감이 끊이지 않던 아카데미에서 아무 말 없이 지지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던 교수님들, 군대에서 상관의 비리를 폭로할 때 밤새워 함께 고민했던 동료 장교와 병사 아우들, 사업과 사회생활의 주요 고비마다 자기 일처럼 신경 쓰면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준 친구들과 선배님들…. 보름달이 뜨기 전에, 그들에게 안부의 문자라도 보내야겠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음을, 대놓고 고백은 못 하더라도.

민족의 명절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지만, 수많은 습속과 믿음들이 공허한 골조만 남긴 채 조금씩 허물어져 가는 것을 본다.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은 오래전부터 떠돌았지만, 어떠한 논리와 이데올로기도 결국 싫은 것과 좋은 것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그러기에 사회의 언어와 규범은 사람 앞에 겸허하고 다정해져야 하지 않을까.

아내와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이 기쁨과 배려심으로 충만해지길 소원해 본다. 이기적인 가족보다는, 가족을 기반으로 서로가 버팀목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인간은 결국, 자기와 가족만으로 살 수는 없다. 내 가족의 혈통을 특별히 챙기는 조상의 음덕보다는, 지금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믿고 싶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의 명절이 감사와 보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오가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기원한다. 사실, 이러한 연휴가 찾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 일지 모른다. 간만에 가족과 기쁨으로 충만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해 봐야겠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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