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황급히 대궐 밖으로 나가는 사연을 보니 가뜩 슬프고 원통한 심사에 놀랍고 답답하여 할 말이 없다. 너희 집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각지 않았더니 그저 불행할 뿐이로다.”
조선 23대 왕 순조(재위 1800~1834)와 왕비 순원(純元)왕후의 막내딸이자 조선 마지막 공주인 덕온(德溫)공주는 16세가 되던 해 생원 윤치승의 아들 윤의선과 혼례를 치렀다. 혼례 당시 덕온공주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어머니뿐이었기에 모녀 간 정은 더욱 애틋했다.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생긴 듯 서둘러 궁을 떠난 딸을 걱정하며 순원왕후가 쓴 편지에는 이 같은 모정이 담겨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2월 18일까지 ‘1837년 가을 어느 날-덕온공주 한글 자료’전을 열어 덕온공주의 혼례 및 혼인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책과 한글 편지 등 29건 41점의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순원왕후가 덕온공주와 사위에게 준 혼수물품 발기(물품의 목록과 수량을 기록한 문서)와 주로 사위 윤의선 앞으로 보내진 편지에는 왕가의 여인이 아닌 어머니로서의 절절한 마음이 진하게 묻어난다.
덕온공주의 혼수 발기는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공주 혼수 발기다. 당시는 일반 사가에서는 길어야 1m 내외 문서가 오갔던 것과 달리, 덕온공주의 혼수 목록 길이는 5.5m에 달한다. 노리개, 비녀, 댕기 등 장신구부터 부엌 도구 및 바느질 도구까지 적힌 물품만 해도 200여 종이다. 주로 살림에 보태어 쓸 수 있는 비단도 재질과 짜임에 따라 40여 종을 포함했다. 사위를 챙기는 데도 부족함이 없었다. 윤의선을 위한 혼수 목록에는 금관부터 허리띠에 이르는 의복 관련 물품이 적혀있다.
왕가의 혼례라는 이유로 호화로운 혼수가 오갔던 것은 아니다. 국립한글박물관 김미미 학예연구사는 “이미 살림살이가 갖춰진 시댁에 들어가 사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공주의 경우 혼례를 치른 후 분가했다”며 “그래서 순원왕후는 더욱 꼼꼼하게 덕온공주의 살림살이를 챙겨야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소장한 1837년 덕온공주 혼례 당시 쓰였던 실제 물건 중 일부도 전시에 포함됐다.
문헌에 따르면 덕온공주는 조카 헌종(憲宗ㆍ재위 1834∼1849)의 계비 간택일 먹은 점심이 체해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급체가 직접적 원인이라 알려졌지만 덕온공주의 건강은 원래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순원왕후는 자주 편지를 보내 딸의 안부를 물었다. 병치레가 잦았던 덕온공주의 제사 준비 또한 잔인하게도 순원왕후의 몫이었다. 순원왕후가 보낸 제사음식 발기에는 각종 나물, 만두, 떡을 비롯한 음식들이 빼곡해 자식 잃은 어머니의 비통했을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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