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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엔 고기 없는 차례상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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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엔 고기 없는 차례상 어떠세요?

입력
2016.09.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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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없이 풍성한 차례상 차리기

메뉴 선택ㆍ재료 구하기부터 난관

산적꼬치, 새송이 버섯으로 대체

고깃국 대신 채소 우린 탕국으로

동그랑땡은 두부전 등 구색 맞춰

계란 옷ㆍ소금간 없는 웰빙상 차려

“조상님도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한국일보 윤주영 기자가 12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요리한 전을 제수 용기에 올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한국일보 윤주영 기자가 12일 서울 광진구 자택에서 요리한 전을 제수 용기에 올리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한국일보 편집부 윤주영(28) 기자는 식당에만 가면 ‘불편한 사람’이 된다. 비위생적인 가축 사육 환경을 바꾸기 위한 작은 노력의 일환으로 만 4년 동안 고집해온 채식주의 식습관 때문이다. 삼겹살에 소주, 치킨에 맥주가 공식 회식 메뉴로 통하는 한국사회에서 고기를 거부하는 그의 신념에 주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적어도 첫 식사 자리에서는 “고기는 섭취하지 않으면서 계란은 왜 먹느냐” “인간이라면 잡식이 섭리 아닌가” 같은 질문이 쏟아진다.

최근에는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내달 결혼을 앞둔 윤 기자에게 새 가족이 모이는 명절은 또 다른 논쟁과 항변의 자리가 될 게 뻔해서다. 그는 12일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도 가족이 주인공의 채식 습관을 열렬히 반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평소 내 비육식주의를 가장 반대해 온 사람들도 가족”이라고 말했다.

특히 명절 차례상에는 고기 요리가 빠질 수 없다. 실제 각종 민속자료에 등장하는 차례 상차림을 취합하면 20여가지 음식 중 육전 육적 육탕은 기본이다. 여기에 생선 요리인 어적 어전 어탕까지 더할 경우 비용과 칼로리는 치솟는다. 지난달 한국물가협회가 전국 주요도시 전통시장 6곳을 조사하니 차례상 29개 품목의 총 비용은 21만6,050원, 이 중 육류 비용은 3분의1에 달하는 8만4,640원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도전했다. 고기 구경은 일절 못하는 ‘채식주의 차례상’이다. 하지만 메뉴 선택부터 난항이었다. 육식 재료를 피하면서 풍성한 차례상을 꾸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메뉴 틀은 크게 바꾸지 않되 단백질 위주의 재료를 끼워 넣기로 했다. 고깃국 대신 채소를 우린 국물에 버섯, 두부를 넣은 채수탕국을 선택했고 쇠고기와 게맛살이 으레 들어가는 산적 꼬치는 콩고기와 새송이 버섯 꼬치로 대체하기로 했다. 또 차림상의 필수인 동그랑땡은 으깬 두부에 각종 채소를 곁들인 두부전과 얇게 채를 썬 연근에 부침가루를 입힌 연근전으로 대신해 구색을 맞췄다.

겨우 메뉴를 정했지만 재료 구하기는 더 까다로웠다. 산적 꼬치에 들어갈 콩고기는 아예 채식전문 식재료를 파는 전문점에서 온라인으로만 주문이 가능했다. 근처 대형마트에서 고기 식감을 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말린 묵을 수소문했으나 “몇 해 전부터 판매하지 않는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결국 새송이 버섯과 느타리 버섯만 쓰기로 했다.

요리 역시 채식 상차림에 부적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을 부칠 때 계란 옷을 피하기 위해 부침가루를 푼 물을 얇게 입히려 했지만 점성이 덜해 두부전이 부스러지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재료를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부쳐내니 제법 전의 꼴을 갖췄다. 명절이면 집안에 진동했던 누린내는 사라졌고 고소한 기름향이 부엌을 가득 채웠다. 재료의 풍미가 그대로 전해지는 두부전, 대파와 꽈리꼬추가 아삭아삭 씹히는 산적 맛도 일품이었고 담백한 채수탕국도 고기를 우려낸 국물에 뒤지지 않았다. 윤 기자는 “채식주의 식탁을 구현하는 작업이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다”면서도 “계란 옷, 소금간 없이도 기대 이상의 차림상”이라며 흡족해 했다.

채식 재료로 명절 밥상과 차례상을 차리는 일이 아직 어색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웰빙 바람이 불면서 고기 위주의 명절 식단이 정답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고기 맛 보기가 쉽지 않았던 시절에나 명절상에 육류를 함께 올려 영양분을 축적했다지만 지금은 세태가 많이 달라졌다. 정연학 국립민속박물관 연구관은 “옛 문헌을 보면 차례상에 어떤 음식을 진설(陳設ㆍ제사나 잔치 때 법식에 따라 상을 차리는 일)하라고 규정하지 않았다”며 “차례 음식은 지역은 물론, 집집마다 다른 게 당연한 만큼 가풍에 맞춰도 도의를 어기는 것은 아니다”고 조언했다.

윤 기자 역시 이번 명절에 채식주의 메뉴를 장기로 내세울 작정이다. 요리 시작 전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던 그는 어느새 “이 정도면 조상님도 좋아하시지 않겠느냐”며 환하게 웃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게맛살, 쇠고기, 햄 대신 느타리버섯과 새송이버섯, 우엉을 끼운 채식주의 산적 꼬치.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2016-09-09(한국일보)
게맛살, 쇠고기, 햄 대신 느타리버섯과 새송이버섯, 우엉을 끼운 채식주의 산적 꼬치.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2016-09-09(한국일보)
산적 꼬치, 두부전, 연근전, 채수탕국, 삼색나물 등을 올린 채식주의 차례상.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산적 꼬치, 두부전, 연근전, 채수탕국, 삼색나물 등을 올린 채식주의 차례상.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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