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모델 꿈꾸던 새내기 여대생
의료사고로 하반신 마비됐지만
녹색 테이블서 제2의 삶 도전
패럴림픽 탁구 女단식서 값진 銀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딸의 은메달이 자랑스럽다며 웃음 짓던 어머니 차혜숙 씨는 사고 당시 이야기가 나오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12년이나 지났지만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서수연(30ㆍ광주시장애인체육회)은 12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파빌리온3에서 열린 리우패럴림픽 탁구 여자단식(장애등급 TT2) 결승전에서 중국의 리우 징(28)에게 세트 스코어 1-3으로 패했다.
리우 징은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대회에서 단식과 단체전 정상에 오른 이 종목의 절대 강자. 서수연은 2013년 장애등급 TT3(숫자가 적을수록 장애가 심함)에서 TT2로 재분류 된 뒤 리우 징에 맞서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발돋움 했다. 2014년 이후 리우 징과의 4차례 맞대결에서 2승2패로 팽팽했지만 금메달 문턱에서 무릎을 꿇었다. 4세트가 너무 아쉬웠다. 9-7로 앞서 두 점이면 세트를 가져올 수 있었지만 리우 징의 스매시가 에지로 이어져 9-8 추격을 허용했다. 서수연은 10-8을 만들었지만 다시 2점을 내줘 10-10 듀스가 됐다. 이후 8번의 듀스 플레이가 이어지는 치열한 공방 끝에 결국 17-19로 패해 금메달을 놓쳤다.
차 씨는 “수연이가 8강부터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다. 사지마비라 컨디션이 떨어지면 강직이 심해 원하는 타점에서 공을 날릴 수가 없다. 은메달도 정말 잘 한 거다”고 격려했다.
서수연은 대학 새내기이던 2004년 의료사고로 하반신 지체 장애인이 됐다. 모델을 꿈꾸던 그는 자세 교정을 위해 목포의 한 병원을 찾았는데 주사 치료를 받다가 신경과 척수에 문제가 생겨 하반신이 마비됐다. 처음에는 재활 치료를 잘 하면 다시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일어설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모든 꿈과 희망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평소 활달하던 서수연은 사고 이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았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고 밥도 안 먹도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않았다. 가족들 모두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이 때 지인이 소개한 탁구가 빛이 됐다. 그 전까지 탁구 라켓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그는 테이블 위에서 희망을 찾았다. 차 씨는 “우리 수연이가 인복이 있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다”고 고마워했다. 서수연은 병원을 상대로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대법원까지 가는 긴 싸움을 펼쳤다. 계속된 송사에 지친 모녀는 2011년에 목포 땅을 떠나 광주로 이사를 왔다.
차 씨는 “6년 만에 지옥 같은 소송을 마치고 감독님이 수연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니 ‘올림픽(패럴림픽) 금메달’이라고 했다”며 “수연이가 메달을 따서 억울하게 의료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대변해줬으면 좋겠다고 늘 말했는데 약속을 지켰다”고 흐느꼈다. 14일부터 시작하는 여자단체전에서 두 번째 메달에 도전하는 서수연은 “그 동안 고생한 엄마에게 금메달을 꼭 걸어주고 싶었는데”라면서도 “단체전에서 중국을 다시 만나면 꼭 되갚아 주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2년 런던패럴림픽에서 24년 만에 한국 수영에 패럴림픽 금메달을 선사했던 임우근(29)은 남자 평영 100m(장애등급 SB5)에서 1분35초18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사격 이주희(45ㆍ정선군청)는 혼성 25m 권총(장애등급 SH1)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앞서 남자 10m 공기권총에서도 은메달을 땄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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