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너무 잘 컸다. 예쁘게 변했네.”
평소 무뚝뚝한 성격으로 알려진 은지원(38)이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내뱉자 공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본인도 쑥스러웠는지 한 마디 더 보탠다. “이제는 교복 입은 학생들이 아니라 말을 놔야 할지 모르겠네요. 한 분 한 분 인격을 존중해 드리고 싶고. (웃음)”
젝스키스가 돌아왔다. 1990년대 말 H.O.T와 함께 양대 아이돌 그룹으로 군림하다 활동 3년여 만인 2000년 돌연 해체를 선언한 지 16년 만이다. 활동을 재개한 젝스키스의 첫 단독콘서트 ‘YELLOW NOTE’(10~11일)가 열린 1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는 너무 오래 걸린 ‘오빠들의 귀환’을 반기는 노란 물결이 가득했다.
티셔츠에 모자까지 노란색으로 맞춘 회사원 유보라(30)씨는 공연 시작 3시간 전에 이 곳을 찾았다. 유씨는 “중학교 때 (강)성훈 오빠 집 앞에서 밤 샜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오늘 빠순이 실력 좀 발휘해 보겠다”며 웃었다. 대학원생 이진아(29)씨도 “여기 걸린 현수막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도 “예전만큼 소리를 지를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항상 곁에 있을게’란 문구가 적힌 노란색 플래카드를 흔들어 보였다.
‘Com'Back’(1999)으로 오프닝 무대를 선보인 젝스키스는 ‘Road Fighter’(1998) ‘사나이 가는 길’(1997)을 잇달아 몰아치며 공연장 분위기를 달궜다. 세 곡 모두 격렬한 안무를 동반하는 탓에 무대가 끝나자 멤버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장수원(36)은 “콘서트 첫 날 오프닝 무대가 끝나고 혓바닥이 갈라져서 너무 힘들었다”며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뒤이어 ‘Come to me baby’ ‘사랑하는 너에게’ 등 비교적 느린 발라드를 부른 뒤 은지원은 “(힘들어서가 아니라) 여러분들 배려 차원에서 댄스곡 아닌 차분한 발라드를 많이 준비했다” “듣기 좋은 발라드로 팬들의 마음을 훔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럼에도 팬들은 온몸의 관절이 꺾이는 듯한 현란한 춤사위를 뽐냈던 ‘왕년의 실력’을 보여달라며 멤버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탄탄한 근육에 상반신을 탈의한 이재진(37)이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을 선보였고 김재덕(37)도 이에 질세라 짧게나마 자신의 주무기인 비보잉 실력을 뽐냈다. 은지원이 두 사람의 비보잉에 합류했다가 이내 자리에 주저 앉아 버리자 강성훈(36)은 “슬로 모션을 보는 것 같았다”며 짓궂은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고지용(36)을 포함해 6명이 활동했던 모습이 담긴 과거 영상과 함께 젝스키스가 16년 만에 발표하는 신곡 ‘세 단어’가 공개되자 여기저기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 번도 잊은 적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다시는 멀리 가지 않을게요’ ‘지금 여기 우리 세 단어면 돼요’ 같은 노랫말은 팬들에게 오랜 기다림을 보상 받는 듯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젝스키스는 지난 5월 이재진의 처남 양현석이 이끄는 YG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으며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신곡 작업 및 콘서트 전 과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양현석 대표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양 대표는 소속사 관계자들과 이날 콘서트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훈이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을 YG에서 이루고 있다. 현석이 형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하자 멤버들은 “우리는 YG 패밀리, 패밀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무모한 사랑’ ‘연정’ ‘커플’ 등 히트곡 20여 곡으로 수놓은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젝스키스를 잊지 않은 팬들이었다. 팬들은 멤버들 몰래 ‘항상 곁에 있을게’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예감’을 떼창 하는 깜짝 이벤트까지 준비했다. 강성훈은 “그냥 다 감동”이라며 노란 물결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멤버 중 유일하게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하면서도 젝스키스의 재결성을 누구보다 바라왔다는 은지원은 또 한 번의 낯간지러운 멘트로 팬들을 열광케 했다. “우리 딱 16년만 더 봅시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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