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9월 12일
1940년 9월 12일,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의 몽티냐크에 살던 18세 청년이 개와 산책을 하다 우연히 동굴 하나를 발견한다. 나무가 쓰러지면서 드러난 구멍이 예사롭지 않았던 그는 친구들을 모아 탐사에 나섰고, 거기서 수많은, 오래된 벽화들을 보게 된다. 이후 고고학자 앙리 브뢰이가 이끈 조사팀은 그 그림들이 후기구석기 마지막 빙하기를 살았던 인류가 남긴 것으로 확인했다.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가 그렇게, 추정연대로 1만7,300여 년 만에 세상에 드러났다.
학자들은 근 2,000 점의 그림과 암각화를 확인했다. 몸 길이 5.2m에 달하는 거대한 들소와 말 사슴 염소 등 동물들이 주였고, 주술사로 추정되는 사람과 사냥꾼들이 함께 묘사된 그림들도 있었다. 근 50년 전인 19세기 말 스페인에서 발견된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통해 선사인들의 그림 솜씨에 놀란 바 있던 학자들은 라스코의 다양한 벽화들이 지닌 서사성, 예컨대 들소 앞에 쓰러져 있는 인간이 새의 머리를 하고 발기한 상태로 묘사된 점 등에 반색하며 선사 미술의 비밀에 대한 썩 새롭지 않은 가설들을 또 한번 풍성하게 내놨다.
동굴은 1948년 대중에게 공개됐다. 금세 동굴 벽에 이끼가 나는 등 훼손이 시작됐고, 당국은 63년 동굴을 폐쇄한 뒤 200m 가량 떨어진 자리에 복제 동굴을 조성해 83년 개장했다. 2009년 2월 17개국 300여 명의 학자들이 연구 및 보존을 위한 국제심포지엄을 벌였고, 생물학과 생화학 식물학 위생학 기상학 지리학 등 전문가들이 제안하고 협의한 바를 보고서로 발간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굴의 온갖 보존 설비와 시스템도 균류의 생장 등을 완벽하게 막지 못하고 있고, 현재는 학자들의 출입도 차단ㆍ제한하고 있다. 사정은 알타미라동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사인들의 동굴 벽화는 그렇게, 개봉하고 얼마 뒤 자동 소멸하는 첩보영화의 은밀한 메시지처럼, 새로운 생태 환경의 자연균형 상태로 회귀하고 있다. 지적 호기심은 어쩔 수 없고 또 필요하지만, 섣부름 탓에 망쳐버린 것들도 많을 것이다. 든든한 보존기술을 갖출 때까지 진시황릉을 열지 않기로 했다는 중국 문화재당국의 최근 결정은 그래서 멋져 보인다. 그 결정을 내린 이들 대부분도 무덤 속을 못 보고 갈 것이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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