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장호(오른쪽)/사진=연합뉴스.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난 어머니의 희망이었다."
하반신 지체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위해 올림픽에서 투혼을 불사른 선수의 이야기가 큰 감동을 주고 있다. 바로 사격선수 이장호(27)의 얘기다.
이장호는 2016 리우 패럴림픽에서 한국에 동메달을 안겼다. 그는 1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슈팅센터에서 열린 R3 혼성 10m 공기소총 복사에서 189.7점을 쏴 슬로바키아 바도비코바 베로니카(212.5점), 독일 힐트롭 나타샤(211.5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날 경기 중반까지 중위권에 그친 이장호는 그러나 후반 들어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선두권을 맹렬히 추격했고, 잇따라 10점 대 중반 고득점을 기록하는 상승세를 앞세워 마침내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장호는 21세였던 지난 2010년 3월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앞서 2007년 부사관에 합격해 사격 교관으로 사병들의 사격 훈련을 지도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한 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을 내려놔야 했다.
우선 살 길이 막막했다. 이장호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일단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며 힘들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군대 밖 세상에 나온 이장호는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든 해보려 했다. 그러던 중 우여곡절 끝에 휠체어 영업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명사수가 되는 꿈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장호는 결국 2014년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에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다시 꿈을 향해 돌진했다.
이장호는 그 해 국립재활원에서 접한 장애인 사격에 투신하면서 다시 새로운 출발을 했다. 그러나 곧바로 혹독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장애인 사격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이장호는 소속팀이 없어 훈련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왕복 180km 거리 사격장을 오가며 실력을 쌓았다. 딱히 수입원이 없는 데다, 자비로 훈련을 이어가다 보니 통장 잔고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싶은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를 붙잡은 것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의 한 마디였다. 장남인 이장호는 "어머니가 훈련에 열중하고 있던 나를 보고 한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다치기 전의 너를 보는 것 같다'고 하셨다"는 말을 했다.
이장호는 악조건 속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묵묵히 사격 실력을 쌓았다. 올해 기적처럼 국가대표에 선발돼 리우 패럴림픽 출전권을 따낸 그는 첫 출전한 대회에서 침착한 승부사의 면모를 보였다. 경기 중반 좌절할 법도 했지만, 그는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자신의 리듬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값진 메달을 획득했다.
이장호는 경기 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메달을 바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기뻐했다. 이장호는 "오랫동안 기다려주신 어머니에게 이 기쁨을 바치고 싶다"며 감격해 했다.
리우 패럴림픽에서 이장호가 보여준 지극한 효심과 꿈을 위한 열정, 지체 장애를 극복한 정신력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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