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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도 “축구는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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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속에서도 “축구는 계속돼야 한다”

입력
2016.09.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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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유럽 축구팬들에게는 가을이 축구의 계절이다. 이들은 지난달 개막한 유럽 각국의 축구리그와 이들 클럽이 맞붙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 흥분하고 있다. 세계 최강 클럽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경쟁하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조제 무리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과 주젭 과르디올라 맨체스터 시티 감독의 지략대결로 변한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더비(라이벌전)’ 등이 주목 대상이다.

그러나 영국 BBC에 따르면 이들보다 명예나 수익은 떨어질지라도 뭔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축구리그도 있다. 아직도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시리아는 자체 축구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축구 클럽은 ‘축구의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함과 동시에 전쟁으로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연대를 유도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프로축구팀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수비수 올렉산드르 쿠체르(가운데)가 3월 10일 임시 연고지 리비우의 리비우 아레나에서 열린 네덜란드 안더레흐트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고 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샤흐타르는 리비우에서 홈경기를 열지만 연고지 도네츠크와의 연결고리도 끊지 않았다. 리비우=로이터
우크라이나 프로축구팀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수비수 올렉산드르 쿠체르(가운데)가 3월 10일 임시 연고지 리비우의 리비우 아레나에서 열린 네덜란드 안더레흐트와의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골을 넣고 팀 동료들과 기뻐하고 있다. 샤흐타르는 리비우에서 홈경기를 열지만 연고지 도네츠크와의 연결고리도 끊지 않았다. 리비우=로이터

고향 잊지 않은 우크라이나 샤흐타르

우크라이나 축구리그는 수많은 강팀의 틈바구니에서 유럽 챔피언스리그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부터 명문팀인 디나모 키예프와 21세기의 신흥강호 샤흐타르 도네츠크는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팀들이다. 그러나 2014년 시작된 내전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자 축구리그가 축소되고 몇몇 팀은 연고지를 떠나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때 16팀 리그였던 이 나라의 최상위리그 ‘우크라이나 프리미어리그’의 규모는 12팀으로 축소됐다.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면서 이 지역의 유력 팀인 세바스토폴과 타브리야 심페로폴이 빠져나갔다. 본래 크림 반도 팀들은 러시아 리그에 참가를 신청했지만, 우크라이나가 크림 반도의 러시아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UEFA는 임시방책으로 크리미아 독자 리그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타브리야는 2014년 해산된 후 크리미아와 우크라이나 2개의 팀으로 사실상 분열되기도 했다.

샤흐타르와 올림피크 도네츠크의 연고지인 도네츠크, 조랴 루한스크의 연고지인 루한스크는 모두 우크라이나 내전으로 직격탄을 맞은 동부 끝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이들 세 팀은 연고지에서 떨어진 리비우와 키예프, 자포리자를 홈구장으로 사용한다. 샤흐타르의 연고지 도네츠크와 새 보금자리 리비우의 거리는 1,200㎞에 이른다. 조랴 루한스크는 비교적 동부지역에 자리잡았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유로파리그 경기를 연고지에서 서쪽으로 900㎞ 떨어진 오데사에서 열기로 돼 있다.

고난 속에서도 샤흐타르는 리그 내 양강을 구성하는 디나모 키예프와 치열하게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디나모와 샤흐타르의 라이벌 관계는 결국 부유한 서부와 가난한 동부, 친유럽 서부와 친러시아 동부의 대립구도를 상징해 왔다. 이제 샤흐타르는 고향을 잃어버렸거나 전쟁에 지친 동부 우크라이나인의 희망을 의미한다. 연고지 도네츠크의 돈바스 아레나에 남은 일부 샤흐타르 직원들은 지역주민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구호와 물자 보급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샤흐타르의 팬들은 팀이 언젠가 다시 돈바스 아레나로 돌아가 경기하는 날을 꿈꾼다.

아프가니스탄 프로축구팀 토판 하리로드가 2012년 10월 19일 역대 아프가니스탄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을 확정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리그는 카불에서 주로 열리지만 토판 하리로드가 서부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듯 8팀 모두 각 지역을 대표한다. 카불(아프가니스탄)=로이터
아프가니스탄 프로축구팀 토판 하리로드가 2012년 10월 19일 역대 아프가니스탄 프리미어리그 첫 우승을 확정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리그는 카불에서 주로 열리지만 토판 하리로드가 서부 아프가니스탄을 대표하듯 8팀 모두 각 지역을 대표한다. 카불(아프가니스탄)=로이터

‘부족들의 통합’ 꿈꾸는 아프가니스탄 축구리그

우크라이나 리그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는 전 국토가 상시적 테러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축구리그는 이어지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프로축구리그는 2012년에 시작됐다. 아프간 프리미어리그(APL)는 출범 이래 계속 나빠지고 있는 치안상황에도 불구하고 점차 성장하고 있다. APL 공동창립자 겸 전 수석조언가 크리스 맥도널드는 BBC에 5년간의 기억을 “피와 땀과 눈물의 시간”으로 요약했다. 그는 지속된 테러 위협에도 불구하고 “축구는 열정이 되고, 행복이 되기에 우리가 계속 이어가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무장집단 탈레반의 영향력이 영토 곳곳에 남아있는 상태에서 지역 기반 리그가 자생적으로 출범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APL은 방송의 리얼리티 쇼를 통해 팬들에게 성공적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선수선발을 위한 ‘마이단 사브즈(녹색 들판ㆍ축구 경기장을 의미)’에서 8팀의 감독이 선수를 각각 15명씩 선발했고, 이를 방송으로 지켜본 시청자들은 탈락자 24명에게 문자메시지(SMS)로 표를 던져 각 팀에 3명씩 합류시켰다.

특히 리그에는 다양한 인종과 부족 출신 선수들이 참여해 ‘통합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을 선사했다. 사이드 샤피르 가와리 당시 APL 사무국장은 “다양한 부족 출신으로 구성된 선수들이 한 팀으로 뛰는 것을 보면서 아프간의 젊은이들과 세계에 우리가 함께 뛸 수 있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 말했다. 맥도널드에 따르면 축구리그는 전쟁과 무질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이슬람 극단주의나 마약거래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며, 몇몇 인기축구선수들은 “선거에 투표해 달라”고 호소해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도 했다.

현재도 APL의 여덟 팀은 모두 중앙의 지원을 받고 수도 카불 근처에서 훈련한다. 리그의 스폰서는 중앙기구와 방송사가 담당한다. 이번 시즌부터는 일본에서 지원한 투광 조명등이 경기장에 설치돼 황금 시간대를 노리고 있다. 완전한 평화가 오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나마 규모 있는 축구리그를 이어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5일 말레이시아 세렘반에서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훈련하고 있다. 시리아 대표팀은 다마스쿠스에서 경기를 치를 수 없어 모든 국가대항전 홈 경기를 다른 곳에서 치러야 한다. 세렘반=연합뉴스
5일 말레이시아 세렘반에서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훈련하고 있다. 시리아 대표팀은 다마스쿠스에서 경기를 치를 수 없어 모든 국가대항전 홈 경기를 다른 곳에서 치러야 한다. 세렘반=연합뉴스

기세 탔던 시리아 리그는 내전으로 축소

6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한국 축구대표팀과 맞붙어 무승부를 기록한 시리아 축구대표팀 역시 내전 가운데서도 버텨나가는 시리아 리그를 통해 구성된 팀이다. 이 리그는 한때 아프가니스탄 리그가 꿈꿀 법한 미래형이었다. K리그 팬들 가운데는 2006년 전북 현대 모터스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시리아의 알 카라마를 기억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전북은 당시 결승전 원정경기 막판에 골을 넣어 3:2로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다.

시리아 축구리그도 아프가니스탄처럼 중앙, 특히 국가의 입김이 강했다. 군인팀인 알 자이시가 2000년대 초반까지 10시즌 우승을 거머쥐며 강팀으로 군림했다. 경찰팀인 알 쇼르티도 강팀이었지만 특히 알 자이시는 의무복무기간을 이용해 대부분의 유능한 청년들을 끌어 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부터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금요일이 올 때: 전쟁구역의 축구’를 저술한 영국의 축구 저널리스트 제임스 몬테이그에 따르면 시리아 축구협회는 이 때부터 ‘민영화’를 추진했다. 만약 알 자이시가 젊은 선수를 다른 팀으로부터 데려오려면 이적료를 지불해야 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정부의 입장에 반대하는 정책의 결행이 쉽지 않은 곳이었지만 다행히 수용됐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는 알 자이시 대신 알 와다와 제3도시 홈스를 연고로 하는 알 카라마가 강팀으로 뛰어올랐다. 어린 선수들에 대한 투자도 증가했고 경기력도 상승했다. 몬테이그는 이 결정으로 시리아 축구가 기세를 탔다고 분석했다.

그런 시리아 축구리그에 치명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011년 발발한 내전이다. 전장에서 경기를 할 수 없으므로 리그의 규모는 축소됐다. 각 팀은 엄연히 시리아 각지에 연고지를 두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기는 그나마 안전한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다. 다마스쿠스조차 이슬람국가(IS) 등 무장집단의 테러 표적이 되는 경우가 잦아 시리아 내에서는 대표팀 경기를 열 수 없다. 한국과의 홈경기도 말레이시아 세렘반에서 치렀다.

한때 최대 5만명에 이르는 관중을 끌어모았던 리그 관객은 이제 수백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알 자이시는 다시 최강팀의 반열에 올랐다. 몬테이그는 “여전히 사기업이 팀을 운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팀은 운영주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인생처럼 경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수 갈래로 찢어진 나라에 남은 몇 안되는 위안이다.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침대축구’라 비판했던 시리아 선수들은 리그 규모 축소와 자본 이탈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자국 리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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