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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청와대 명절선물

입력
2016.09.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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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과 설 명절에 대통령이 각계 인사들에게 보내는 선물에는 그때그때 시대상황이 반영되고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취향이 담긴다. 그래서 이런저런 화제가 된다. 이승만 대통령은 빈민층에 담요를, 박정희 대통령은 유력인사들에게 인삼 상자를 보냈다. 전두환ㆍ 노태우 대통령 시절엔 돈봉투였다. 이리 저리 조성된 풍부한 통치자금으로 여야 정치인 등을 관리하는 수단이었다. 문민화 이후엔 지역특산물이 대세가 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줄곧 아버지 김홍조옹 표 멸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고향인 신안의 김, 한과, 녹차류 등으로 소박하게 선물세트를 꾸렸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처음엔 대통령의 명절 선물을 낡은 정치문화로 여겨 탐탁지 않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대철 당시 민주당 대표 등이 “한국 문화인데 없어지면 정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하자 생각을 달리했다. 가평 잣, 문경 표고, 홍천 은행 등 지역특산물에 한산 소곡주, 지리산 국화주, 전주 이강주 등 민속주를 차례로 넣어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인제 황태, 논산 대추, 부안 재래김, 통영 멸치, 달성 4색 가래떡, 장흥ㆍ강진 표고 등을 보냈다. 지역특산물을 보내는 데는 화합과 농축수산물 소비 장려의 뜻이 담겼다.

▦ 박근혜 대통령도 지역 특산물로 명절 선물세트를 마련해왔다. 이번 추석에는 경산 대추, 여주 햅쌀, 장흥 육포로 구성됐다. 육포 단가가 좀 높지만 5만원 이내 가격대라고 한다. 보낸 대상은 국회의원 등 사회 각계인사, 애국지사, 독거노인 등 사회적 배려 계층이다. 선물을 고를 때는 고려해야 할 것도 많다. 불교계 인사들에게 보낸 세트엔 육포 대신 다른 품목이 들어갔을 것이다. 2006년 추석 때는 집중호우 피해자들과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도 일률적으로 다기 세트를 보냈다가 빈축을 샀다.

▦ 이번엔 엉뚱한 신경전도 벌어졌다. 지난해 ‘정윤회 문건’사건으로 청와대를 떠났다가 배지를 단 더민주 조응천 의원만 선물을 못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발단이었다. 조 의원은 서운한 감정을 SNS에 올렸고, 청와대는 “일부 의원들에게 배달이 지연됐는데 그러느냐”며 배송을 취소해버렸다. 표창원 의원 등 일부 야당 의원들은 선물을 되돌려 보냈다.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명절선물 관행을 없애자는 차원이라고 하나 대통령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터이다. 마음만이라도 풍성해야 할 한가위 명절에 쩨쩨하고 각박한 모습들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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