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 저주 사건
유승훈 지음
글항아리 발행ㆍ316쪽ㆍ1만6000원
조귀인 사건 등 9개 사례로
궁궐사회 주술의 역사 풀어
누구든 참여한 권력게임 일환
장희빈도 일반 플레이어 불과
무속에 지배당한 조선 민낯에
‘성리학적 합리성’ 신화 깨져
효종 3년, 그러니까 1651년 1월 조선은 왕명에 따라 ‘수리도감’을 설치한다. 이 기관의 임무는 창덕궁, 창경궁 두 궁궐의 대대적 보수공사였다. 오래되고 낡아서 살기에 불편해졌다거나, 어디가 무너져 긴급하게 고쳐야 한다거나, 불이 났다거나 하는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리 급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채 녹지 않은 땅을 상대로 힘겨운 공사를 벌인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조귀인 사건.
조귀인은 인조의 후궁이었다. 그는 효종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해서 효종이 즉위한 뒤 효종과 대비를 저주하기 위한 모략을 꾸몄다. 믿을 만한 종을 통해 “죽은 사람의 두골, 수족, 치아, 손톱, 발톱, 머리카락, 벼락맞은 나무, 무덤 위의 나무”를 구했다. 심지어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살점”을 떼오거나 “시체에서 흘러나온 물을 적신 솜” 따위도 구해왔다. 이런 것들을 모아다가 효종과 대비가 머물거나 자주 드나드는 곳에 갈아서 몰래몰래 뿌려댔다. 조귀인 스스로 여종들에게 “수고하지 않고 성공하는 길로는 저주가 최고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귀인의 여종들은 물론, 딸인 효명옹주도 동원됐다.
어디에다 얼마나 뿌렸는지 알 수 없으니 대대적 공사가 벌어졌다. 그 해 2월에서 4월까지, 3개월 동안 승려 2,000여명이 동원됐다. 이 과정에서 나온 온갖 저주물들의 양은 엄청 많았다. “임금이 거쳐가는 길과 계단, 문 주위에서 빠짐 없이 저주물들이 발견”됐다. 흉악하기는 그 양에 못지 않다. “개뼈다귀, 불탄 고양이, 죽은 참새” 정도는 애교였고 “어린아이의 어깨뼈나 두개골,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항아리” 같은 것까지 나왔다.
당연히 이것들은 조귀인 만의 것은 아니었다. 저자 유승훈은 이렇게 썼다. “조귀인이 혼자서 이 모든 저주를 한 것은 아닐 터이다. 광범위하게 오랫동안 저주가 있어온 흔적이다. 숱한 왕실과 궁인들이 저주에 동참했다는 증거이며 궁궐 내 쉬쉬했던 주술의 역사가 민낯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민낯을 한데 모은 것이 바로 ‘조선궁궐저주사건’이다. 효종대의 조귀인 사건 외에 성종대의 저주상자, 중종대의 작서 사건, 광해군대의 무녀 옥사 사건, 정조대의 존현각 자객 침입 사건 등 모두 9건의 사건을 다뤘다. 저주와 관련된 수없이 많은 의혹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앞뒤 전후 사정과 맥락이 어느 정도 드러난 사건들만 뽑아 엮은 것이다.
책은 읽어나가기 다소 까다롭다. 어렵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다. 일단 남을 저주하고 욕하는 꼴들을 지켜보는 게 쉽진 않다. 더구나 여기서 다루는 사건들은 일반 여염집이 아니라 권력의 최정점인 궁궐 내부에서 벌어지는 암투다. 최정점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니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때론 집안과 정파 전체를 걸어야 하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싸움이다 보니 더더욱 음험하고 치사해진다.
그럼에도 묘하게 이 책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은 조선을 두고 ‘성리학적 합리성’을 갖춘 나라라고 추켜세우는 데 대한 의심을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식민지가 된 패배감을 ‘악독한 일제’에다 모두 내던져버리고 나니 언젠가부터 조선에 대한 분칠이 유행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성리학적 합리성’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그런 건 대게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당사자들이 목소리 드높여 외친다면, 오히려 더 철저하게 의심해야 한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같은 속담이 괜히 생겨나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한 효종대의 조귀인 사건만 해도 그렇다. “산 자의 일도 모르는데 죽은 자의 일을 묻지 말라”고 일갈한 공자의 세속주의 선언을 물려받은 조선의 국왕 아니던가. 의연하게 “저주한다 해봤자 결국 내 손에 잡혀 사약을 받지 않았느냐. 그깟 저주 따위가 대체 무슨 소용이냐”라고 쿨하게 한마디 하고 그만뒀으면 아주 멋있었을 텐데, 결국 그 저주물을 치운다고 궁궐을 다 들어다 엎었다. 조귀인의 저주 못지 않게 효종의 수리도감 설치 또한 조선이 여전히 비합리적인 무속에 지배당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징표인 셈이다.
책의 또 한가지 흥미 포인트는 인현왕후와 장희빈에 대한 얘기다. 거듭 제작된 TV 드라마 덕분에 우리 뇌리에는 ‘어질고 후덕한 인현왕후 vs 악독하고 모진 장희빈’이란 구도가 박혀 있다. 저자는 이를 허물어뜨린다.
지독한 악녀 이미지 때문에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김태희 등 시대의 명배우들이 다 도전했던 장희빈은 천하의 둘도 없을 악녀가 아니다. 물론, 인현왕후를 저주하긴 했으나 통상적 수준이다. 인현왕후 얼굴을 그려다 화살을 쏘아댔다는 둥의 얘기는 나중에 과장된 얘기다.
인현왕후 또한 점잖은 인물은 아니었다. 숙종에게 장희빈 험담을 끊임없이 늘어놓는가 하면 이런저런 협박도 꺼리지 않았다. 숙종이 “덕 없고 언행은 사나우며 말과 행동의 분노와 원망에 차 있어 세월이 갈수록 감화의 기대가 끊어지고 있다”고 한탄하면서 천하의 악녀처럼 취급한 상대도 장희빈이 아니라 인현왕후였다. 인현왕후가 죽은 것 역시 장희빈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이런 갈등 과정에서 온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인현왕후든 장희빈이든, 아니면 그 누구든 일단 궁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궁궐 내 권력 게임에 참여하는 플레이어가 된다. 게임에 참여한 이상, 플레이어 처지에서 최선은 게임의 룰에 이끌려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 게임에서 선과 악을 쫙 갈라 누구는 절대선이었고, 누구는 절대악이었다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답은? 게임판 자체를 뒤엎는 것뿐이다. 저자는 “저주 사건의 실체를 알아갈수록 궁궐사회의 이중성과 위선이 해괴하게 느껴진다”고 썼다. 성리학적 합리성 운운하면서 한사코 먹으로 피를 가리려는 것 보다는, 혹독한 남성중심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는 국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지 들여다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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