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속 인문학
김홍기 지음
중앙북스 발행ㆍ268쪽ㆍ1만4,000원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19세기 영국 정치가 겸 소설가 에드워드 조지 불워 리턴은 아마 패션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듯하다. 그는 “인간은 매번 같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며 옷을 입을 때의 기본 원칙과도 같은 ‘TPO’(TimeㆍPlaceㆍOccasion)를 강조했다. “패션 외교만큼 섬세한 외교는 없다”는 것이다.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 김홍기씨가 낸 ‘옷장 속 인문학’은 ‘알맞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평범한 주장에서 한발 더 나간다. ‘어떻게 입을 것인가’의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옷은 직업과 사회적 관계, 심지어 애정까지 결정지을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감, 정체성, 세상과 대면할 용기, 시대를 읽는 눈, 미적 감각 등 취향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간다.
패션이라는 개념은 르네상스 시대에 처음 생겼다. 신념과 복종을 미덕으로 여겼던 ‘신’ 중심의 중세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근대사회로 이행해감에 따라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성이라는 개념이 나왔고, 패션은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아주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등장했다.
패션은 민주화를 앞당기는 데도 기여했다. 1980년대 사무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스니커즈가 유행하며 처음으로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스니커즈가 출시됐다. 물론 착화감이 좋은 탓도 있었겠지만 일부 여성들은 하이힐이 아닌 스니커즈를 신음으로써 ‘하이힐을 신고는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기 어렵다’, 즉 성공한 여성이 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무엇을 입는지’와 별개로 둔다면 ‘입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우리 모두가 매일 무언가를 입는다. 너무도 친숙해 우리는 옷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저자는 패션의 사회적 의미와 역사에 끼친 영향을 얘기하며 옷을 사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입는다’는 것은 곧 “나와 마주하며 내 모습을 정확하게 알아가고 이를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행위”이며 동시에 “사회라는 시험대에 자신을 반복적으로 내놓는 훈련”이라는 그의 말은 이 한 문장으로 축약된다. “입는다, 고로 존재한다.” 현실밀착형 교양서인 책이 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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