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개발한 세종시 신도심(행복도시) 상가용지를 매입한 A씨는 이 땅을 담보로 상가 신축 비용을 마련하려고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거절당했다. 은행 측은 “본인 명의가 아닌 땅을 담보로 무슨 대출을 받느냐”고 했다. A씨가 토지대금을 완납했지만 법적으로 이 땅의 소유권은 아직 LH에 있기 때문이다. A씨는 “LH에서 작년까지 땅의 명의변경을 해준다고 약속했는데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준공허가를 해주지 않아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며 “어떻게든 돈을 끌어 모아 건축공사를 진행 중이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세종시 신도심(행복도시) 상가용지 매입자들이 LH가 개발한 토지의 준공 허가 권한을 가진 행복청의 불통 행정 탓에 1년이 가까이 소유권을 넘겨받지 못해 불이익을 보고 있다. 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건축비를 충당하려던 매입자들은 소유권이 없다 보니 대출 길이 막혀 막대한 손해를 떠안은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8일 행복청 및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세종특별본부에 따르면 LH가 분양한 2-4생활권 BRT도로변 상업용지의 명의변경을 빨리 해 달라는 해당 토지 매입자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LH에서 계약서와 안내문 등을 통해 지난해 9월까지 소유권을 이전해준다고 약속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명의변경이 지연되는 것은 해당 토지에 대한 LH의 개발행위 준공허가(준공허가)권을 가진 행복청의 일방통행식 행정 때문이다. LH는 약속한 명의변경 시한을 지키기 위해 행복청과 준공허가 협의를 했다. 하지만 행복청은 2-4생활권 전체 상가용지(54개 필지) 가운데 13개 필지(백화점 부지 등 포함) 개발이 마무리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LH에 준공허가 신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 행복청은 ‘행복도시의 체계적인 개발을 위해 생활권 전체 공사를 마쳐야 준공허가를 내준다’는 방침 때문이라는 명분도 내세웠다.
명의변경이 지연되면서 해당 상가용지 매입자들은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해 불이익을 보고 있다. 수십억원에 달하는 토지대금을 지불해 자금이 바닥난 매입자들은 매입한 땅을 당보로 대출을 받아 상가 신축 비용 등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소유권이 없어 대출 길이 꽉 막혔다. 자금줄이 꽁꽁 묶인 매입자들은 주변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비싼 이자를 감수하며 저축은행 대출과 사채까지 동원해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일부 매입자들은 매달 이자 등으로 수 천 만원을 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매입자는 “대금을 모두 지불하고도 내 땅의 소유권이 없어 손해가 막심하다”며 “손해에 대한 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빨리 명의변경이나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1년여간 불통 행정으로 일관하던 행복청은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상가용지 매입자들의 민원이 극에 달하고, 본보 취재가 시작되자 뒤늦게 준공허가를 내준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를 위해 최근 관련부서 의견 등을 수렴해 명의변경을 위한 해당 상업용지 부분준공허가 이행계획을 마련했다.
행복청의 이런 방침에 LH는 지난달 말 서둘러 준공허가를 받으려 했지만 행복청은 이충재 청장이 투자유치 차 해외출장 중이라는 이유로 이마저 시일을 늦췄다. 이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소유권을 이전 받아야 할 매입자들은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
행복청 관계자는 “행복도시는 기본적으로 각 생활권별로 LH의 사업에 대해 준공허가를 하고 있어 해당 상업용지 준공허가가 늦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상업용지 매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예외적으로 부분준공 허가를 내주기로 하고, 여러 가지 사항을 검토해 이달 중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