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해설가 하일성(67)씨가 8일 서울 송파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최근 두 차례 사기 혐의로 피소되는 등 구설에 올랐던 하씨는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외면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56분쯤 하씨가 대표로 있는 기획사 스카이엔터테인먼트 복층 사무실 계단에 하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직원이 발견해 신고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하씨가 휴대폰에 ‘사랑한다. 미안하다’ 등을 담은 문자 메시지를 작성해 누군가에게 보내려 했던 흔적이 발견됐다. 사망 시간은 이날 오전 6시 전후로 파악됐다.
경찰은 일단 타살 혐의점이 없고 하씨가 최근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어려움을 겪었다는 주변의 말을 종합할 때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아는 사람 아들을 프로야구단에 입단시켜 달라”는 청탁을 받고 5,000만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등)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강남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며 지인에게서 3,000만원을 빌려 갚지 않은 혐의(사기)로 피소됐다. 또 하씨 소유 경기 양평 소재 전원주택 부지가 채무로 인해 경매에 나오면서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부인 강모(60)씨도 이날 경찰 조사에서 “안 좋은 사건들로 명예가 실추돼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여러 사건에 휘말리면서 지인들도 하씨에게 등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주일 전 하씨를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측근 A씨는 “사기 사건이 보도된 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고 돈줄이 막히면서 괴로워했다”고 전했다. 지인 B씨는 “프로감독들에게도 돈을 꾸는 등 주변에 수시로 손을 벌려 만남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 하씨 사무실 건물 주차장에서는 법원 압류 스티커가 붙은 하씨 회사의 외제차량이 발견됐다. 건물 관리인 C씨는 “지난해 초부터 월세를 자주 납부하지 않아 이달 안으로 사무실을 비우기로 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고 교편을 잡았던 하씨는 1979년 동양방송(TBC)에서 야구해설을 시작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야구행정가로도 나서 2006~2009년 제11대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맡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에 일조했다. 퇴임 이후 다시 마이크를 잡았지만 은퇴 선수들이 대거 방송계에 유입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하씨의 비보에 야구계도 큰 충격에 빠졌다.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 “늘 밝고 쾌활한 친구라 죽음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찰은 부검은 실시하지 않고 정확한 사망 경위와 타살 여부를 계속 수사할 예정이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성환희 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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