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작년 ‘하지 압사사고’ 관련
“저주받은 사우디 왕가” 연일 공격
사우디 “이란은 조로아스터교” 역공
“양국간 정치적 긴장에서 비롯
수니-시아파 주도권 경쟁” 분석
10일부터 시작되는 이슬람 성지순례 ‘하지’기간에 앞서 성지 메카를 관리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신경전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하지 기간에 발생한 대규모 압사사고를 두고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연일 ‘사우디 때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를 둘러싼 양측의 대립은 사우디와 이란 사이의 정치적 긴장을 드러낸다는 분석이 나온다.
7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지난해 하지 때 발생한 압사사고는 저주받고 악한 사우디 왕가가 성지를 운영할 자격이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앞서 5일 사우디 정부가 사고 이후 부상자들에게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기는커녕 컨테이너에 몰아넣어 사실상 사망을 방조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로하니 대통령도 이날 내각회의에서 “이슬람 국가들이 연합해 2015년 사고를 일으킨 사우디를 벌해야 한다”고 말하며 합세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역으로 이란에 책임을 돌렸다. 모하메드 빈 나예프 사우디 왕세자는 로이터통신에 “그들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이란인들의 종교적 의무를 방해하고 하지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압둘아지즈 알셰이크 사우디 최고 율법학자는 “하메네이의 발언은 놀랍지 않다”며 “이란인은 무슬림이 아니라 수니파를 무너트리려는 조로아스터교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과격한 발언을 했다. 그는 “이란은 무슬림 세계에서 고립돼 있으며 성지를 지켜볼 운명을 지닌 사우디의 영광을 뺏으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란 정부가 문제삼고 있는 하지 압사사고는 지난해 하지 기간인 9월 24일 순례객들이 메카 미나 계곡에서 ‘악마의 기둥’이 있는 자마라트 다리 쪽으로 대거 몰려들면서 발생했다. 당시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는 최소 2,400명이며 이 가운데 이란인은 464명이지만 사우디 정부는 공식 사망자를 769명으로 발표하는 등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국은 지난 5월 이란 무슬림의 하지 참여 여부를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하지는 매년 이슬람력으로 마지막 달인 ‘순례의 달’에 이슬람교의 총본산인 메카를 방문하는 순례를 말한다. 이슬람교에서는 하지를 일생에 한 번은 수행해야 할 의무로 본다. 지난해에도 200만여명이 하지 기간에 메카를 방문했지만 사우디 정부의 미비한 안전대책이 참사를 불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간 가디언은 당시 보도에서 “사우디가 성지 순례객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치안과 안전대책에는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란 최고지도자들의 사우디 비난은 무슬림 세계의 주도권 경쟁이 낳은 불협화음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수니파 맹주 사우디와 시아파 맹주 이란은 예멘과 시리아에서 각 종파 세력을 지원하며 사실상 대리전을 펼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정면 충돌도 있었다. 사우디가 시아파 지도자 님르 알님르를 테러 혐의로 사형에 처하자 분노한 이란 시위대가 이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공격해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했고 사우디는 1991년 회복한 이란과의 국교를 25년만에 단절했다.
하지만 양국의 분쟁이 극단까지 치닫게 된 데는 하지 압사사고로 인해 악화된 감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많다. 공교롭게도 1987년 양국의 국교가 단절된 것도 하지 기간에 발생한 사우디 경찰과 이란 순례객의 충돌 때문이었다. 이후 1991년 국교 회복 이전까지 3년간 이란 정부는 하지 기간에 순례객을 보내지 않았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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