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배우 홍본영
스타는 대중이 만든다. 그러므로 스타는 대중이 몰리는 곳에서 탄생한다.
현대적인 매체가 발달하기 전 스타 탄생의 장소는 대개 시장이었다. 조선 후기에 시장이 활성화 하면서 사람들이 시장으로 몰려들었고, 상인들은 더 많은 이들을 모으려고 재주꾼을 불렀다. 그렇게 판소리를 비롯해 다양한 예능들이 시장에서 다듬어지고 완성되었다.
시장 스타 다음은 라디오 스타였다. 시장처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작은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전 국민이 들을 수 있게 되면서 수많은 스타가 나오고 팬 층이 형성되었다. 관객의 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다음으로는 텔레비전 스타들의 시대다. 라디오 시대와 달리 목소리뿐 아니라 시각적인 요소를 두루 갖춘 스타들이 나오면서 대중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시대일까. 지금은 손바닥 스타 전성시대이다. 전 세계에 보급된 모바일 폰 덕분에 사람들의 손바닥 안에서 스타가 탄생한다.
손바닥까지 전달되는 여러 콘텐츠 중에서 가장 호응이 빠른 것은 음악이다. 음원은 물론이고 방송 무대를 재생하는 데도 3분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기 제격이다. 특히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그램에서 촬영한 무대 영상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된다. 볼거리도 충분할 뿐더러 무엇보다 음향이 많이 좋아진 까닭이다. 방송 녹화도 녹음실에서 만든 음원 못잖게 음질이 좋게 다가온다. 그래서 한 무대 한 무대가 ‘인생무대’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몰락의 무대’가 될 수도 있다.) 모든 무대가 ‘나는 가수다’ 경연과 다를 바 없어진 것이다.
얼마 전 방송 무대를 직접 체험했다. ‘너의 목소리가 보여(너목보)’에 출연했다. 중국에 있을 때 연락을 받았다. 준비할 것이 말 그대로 어마어마했다. 방송국에서 주문하는 대로 틈틈이 이런 저런 곡들을 녹음하고 작가에게 보냈다. 그런 후 한국에 들어와 미팅을 끝내고 사전 녹음과 인터뷰까지 마쳤다. 이제는 당일 녹화만 잘하면 되겠지 했는데 또 주문이 들어왔다. 다른 컬러의 노래를 녹음해서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스케줄에 쫓겨 이동하는 차 안에서 폰으로 녹음해 전송하기도 했다. 예삿일이 아니었다. 나와 함께 무대를 만들 가수(브래드 리틀)를 섭외하고 끝없는 회의를 통해 무대를 구상해가는 스텝들의 열정이 무서울 정도였다. ‘작은 손바닥’무대로 진출시키기 위해, ‘인생무대’를 만들기 위해 가수 이상으로 가수를 위해 헌신하는 느낌이었다.
녹화 당일, 브래드 리틀과 ‘오페라의 유령’을 부르고 난 뒤 담당 작가에게 이런 고백을 했다. 실토였다고 하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는 텔레비전을 볼 때 편하게 앉아서 보면 안 되겠어요. 이렇게 밤을 새워 가며 오랜 기간 열정을 투자해 무대를 만드는지 몰랐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손바닥 무대’는 세계로 열려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유럽, 미국 등 어디에서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만 하면 곧장 ‘손바닥 스타’에 등극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3분 ‘인생 무대’를 위해 밤낮을 잊고 뛰는 스텝들이 바로 우리 대중문화의 주역이다. 스텝들이 숨은 곳에서 흘리는 땀 한 방울 한 방울이 한류의 젖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대중문화는 무조건적인 환영을 받지는 않는다. 대중문화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이를 통제하려는 시도도 많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전파는 무한히 자유롭다. 손바닥을 통해 교류하는 대중과 대중 간의 소통은 국적과 정치를 초월한다. 각 나라의 대중문화가 전 세계에 보급된 손바닥 무대에서 무한 경쟁을 펼치는 형국이다. 손바닥 안에 세상에서 가장 큰 경연 무대가 들어선 셈이다.
이 거대한 세계 무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대중의 마음에 가 닿으려는 노력이다. 나는 너목보에 출연하면서 방송 스텝들의 땀과 열정을 직접 느껴보았다. 그들의 열정은 한국 대중문화의 저력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불어 그들의 열정에 부끄럽지 않은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데, 내 손바닥에도 그들 못잖은 에너지가 넘쳐야 부딪쳤을 때 전 세계 사람들이 다 귀를 기울일 만큼 크고 매력적인 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 아닌가. 애당초, 음악 한류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공연자와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열정과 진심이 어우러져 탄생한 현상이었다. 지속의 비결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족을 달자면, 방송이 나간 그날,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까지 전화가 걸려왔다. 한국 방송 콘텐츠를 거의 동시간대에 보고 있는 아시아인이 그렇게 많은가 싶을 정도였다. 방송 스텝들이 완성도를 높이려고 그토록 노력한 이유가 보다 확실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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