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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면서 이야기 안에 있다

입력
2016.09.0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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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해보면 알게 된다. 자기도 모르게 과장이 생기고 거짓이 끼어든다는 걸.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이건 단순히 정직성의 문제만은 아니다.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말로 정확히 옮겨지지도 않거니와 대개 그것들은 우리가 기대하는 매끈한 질서 속에 있지 않다. 앞뒤가 안 맞기 일쑤고 튀어나온 데를 맞추자면 곁가지들이 자꾸 생겨난다. 그러다 보면 로렌스 스턴의 소설 ‘트리스트럼 샌디’(1767)의 예처럼 이야기가 두 권 이상 진행되었는데도 주인공은 아직 태어나지 못한 상태일 수도 있다. 부모님의 잠자리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되는 주인공의 자서전적 고백은 중요한 순간 남편에게 시계 밥을 주었는지 물어본 어머니의 한마디에서부터 샛길로 미끄러진다. ‘트리스트럼 샌디’의 경우는 그 작정한 혼돈으로의 미끄러짐이 일관되고 유기적인 서사에 대한 조롱을 넘어(그러나 이 역시 결국은 이야기의 ‘질서’다) 그 자체로 상당한 웃음과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이야기에 불순물 혹은 윤활유가 섞이는 일차적 이유도 재미, 쾌락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우리는 그 근원적 욕망에서 얼마간은 ‘호모 나랜스(Homo Narrans, 이야기하는 인간)’인지도 모른다.

‘흰 거짓말’이라는 말도 있다. 단답의 말조차 순간을 모면하려는 작은 거짓과 너무도 쉽게 공모한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것은 때로 인간관계의 피로를 줄이려는 방어기제 같은 것이기도 할 테다. 김종관 감독의 영화 ‘최악의 하루’는 그렇게 별것 아닌 작은 거짓말이 쌓이고 얽히면서 곤경에 빠지는 은희라는 젊은 여성의 하루 이야기다. 서촌의 골목길과 남산 숲길이 주요 장소로 등장하는 영화는 보행의 시선과 리듬으로 섬세하게 드러나는 서울의 ‘낯선’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종종 좁게 포착된 도시의 풍경들로부터 우리 쪽을 응시하는 듯한 ‘낯섦’을 안긴다면, 김종관 감독의 카메라는 순하고 맑은 호기심으로 우리가 이 도시에서 놓치고 있던 것들을 되돌려주려는 것 같다. 그런 감독의 태도는 인물의 소극(笑劇)을 지켜보는 카메라의 시선에도 일관되게 담겨 있어 시종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영화를 따라가게 만든다.

그런데 은희에게 ‘최악의 하루’를 선사하는 ‘작은 거짓말’은 영화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모티브이기도 하지만 영화가 스스로를 가리키고 의식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은희가 서촌에서 만나 길을 안내하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는 도입부 내레이션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야기를 만들어낸 화자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영화의 말미에 남산에 홀로 남은 은희 곁에 다시 나타나 하루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사실 자신의 책을 번역 출간한 한국 출판사의 무성의한 태도로 황당한 일들을 겪는 료헤이의 하루도 은희의 ‘최악’에 못지않다. 물론 두 사람 다 김종관 감독이 만들어낸 허구 속 인물들이고 그들이 겪는 곤경도 그렇다. 은희는 연기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녀가 이날 하루 쏟아낸 거짓말들은 삶이라는 ‘이야기’ 속 무대에서 벌인 연기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우리들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다. 이런 겹의 이야기 구조와 ‘거짓말’을 진실과 섞이고 진실을 매개하는 ‘허구’로 은유하는 방식이 반드시 새로운 것은 아닐 테지만, 김종관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세상의 이야기 속에 겸손하게 포함시키는 자리를 아는 것 같다. 료헤이와 은희가 몸짓과 외국어의 소리로 소통하며 어두운 남산길에서 찾고 만나는 판타지는 우리를 위로한다. 그들은 이야기 속 인물들이면서 여기 보잘것없는 현실의 우리다. 이야기의 바깥에서인 듯 조금은 느닷없다 싶게 료헤이의 입을 통해 ‘해피엔딩’이라는 말이 도착할 때, 이 말을 이야기의 일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은 두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가 이야기 속에 있는 것은 우리가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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