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인권감수성 갈수록 약화
폭언, 폭행 등 소폭 줄었지만
불합리한 검문 등 기본권침해 늘어
“걸음걸이 이상” 자의적 몸수색도
신분증 제시 등 매뉴얼 지켜야
대학원생 A(28)씨는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부근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휴대폰 수색을 당하는 봉변을 겪었다. 여느 때처럼 점심식사 후 소화를 시킬 겸 산책을 하던 그에게 사복 경찰관 2명이 다가와 신분증과 휴대폰을 요구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몰래 카메라(몰카) 범죄로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들춰보며 “사진을 몰래 찍은 것이 아니냐” “왜 자꾸 이 근처를 배회하느냐”며 꼬치꼬치 캐물었다. 경찰은 그를 며칠 동안 관찰한 사실도 알렸다. A씨는 “성범죄자 취급에 너무 화가 나 항의를 하니 ‘시민안전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며 한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이 시민들의 인권을 교묘하게 침해하는 행위가 늘고 있다. 물리적 폭행이나 폭언은 줄었지만 불심검문과 체포 시 권리 불고지 등 일상 생활에서 인권 침해 사례는 오히려 증가해 경찰의 ‘인권 감수성’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7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2015 인권상담사례집’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 상담 건수는 총 2,118건으로 2014년도(2,232건)보다 소폭 하락했다. 폭행, 폭언 등 직접적 위협 행위는 감소 추세다. 경찰의 폭행 및 가혹행위와 관련한 상담은 2014년 572건이었지만 지난해 490건으로 줄었다. 폭언ㆍ욕설 등 인격권 침해 역시 410건에서 402건으로 다소 감소했다.
반면 시민 입장에서 공권력 남용으로 느낄 만한 위해 사례는 늘었다. ‘거리에서 불합리하게 불심검문을 당했다’며 상담을 신청한 사례는 38건으로 2014년과 비교해 9건이 증가했고 ‘체포과정에서 권리를 고지 받지 못했다(65건)’는 경우도 전년(48건) 대비 17건이 늘어나는 등 기본권 침해를 호소하는 시민이 많아졌다.
상담 사례를 보면 불심검문 등 피해는 대부분 경찰이 현장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시민 B씨는 2014년 11월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 전단을 돌리던 중 신분을 알리지 않은 경찰에게서 동의 없는 몸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B씨 걸음걸이가 수상했다”고 해명했으나 인권위는 해당 경찰관의 행동이 경찰청이 만든 불심검문 시행 지침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지침에는 불특정 시민을 검문할 때 ▦경례 후 먼저 신분증을 먼저 제시할 것 ▦검문 이유를 설명할 것 ▦대상자 동의 후 소지품 등을 직접 만지지 않고 눈으로 조사할 것 등 준수 항목이 명시돼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경찰이 편의와 시급성을 내세우면서 불심검문 절차를 규정한 경찰직무집행법 3조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경찰이 폭행ㆍ폭언 근절 등 눈에 보이는 인권침해 예방 활동만 중시한 채 시민 불편을 볼모로 실적 쌓기에 골몰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찰청 인권위원을 맡았던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장 경찰이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경찰 수뇌부가 인권 감수성의 척도라 할 수 있는 낮은 단계의 침해 행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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