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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웃기는 정상회의

입력
2016.09.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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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가장 많이 입방아에 오른 사람은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필리핀어인 타갈로그어로 “개자식(son of whore)”이라고 해 미국이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하는 파문을 불렀다. 뒤늦게 “유감”을 표했지만, 사과하지 않은 것을 두고 또 구설에 올랐다. 필리핀 주재 미국 대사를 “게이”라고 하고, 성폭행 당한 뒤 숨진 호주 선교사에 대해 “내가 먼저 (성폭행) 했어야 했는데”라고 해 외교분쟁을 일으킨 적도 있다.

▦ 정치인들의 험담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가 희생양이 된 경우가 많았다. “가장한 무슬림” “블랙 팬서(급진적 미국 흑인인권운동 단체) 회원”이라는 등의 비난에 시달렸고, 빈 라덴의 죽음을 꾸몄다는 모함도 받았다. 2008년 대통령 선거 때는 아버지가 케냐인이라는 것을 비꼬아 ‘어느 케냐 마을에서 돌대가리가 실종됐다’고 쓰인 티셔츠가 유행하기도 했다. 1992년 대선 때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민주당 정ㆍ부통령 후보인 클린턴과 고어를 “두 얼간이”로 지칭하기도 했다.

▦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화제의 중심에 섰다. G20 직전 자국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FF) 전체 세션에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나 이후 일정이 줄줄이 늦춰지는 파행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1시간45분 늦게 시작됐다. 교황을 두 번이나 바람맞히고, 어떤 정상들은 서너 시간씩 기다리게 한 그의 ‘지각 이력’에 비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니다. G20에서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은 우크라이나ㆍ시리아 사태 논의보다 잡아먹을 듯 살벌한 눈싸움이 더 전파를 탔다.

▦ G20이 처음 생긴 건 1999년이다. 세계 금융안정을 논의하기 위한 재무장관ㆍ중앙은행장 모임이었다. 그러다가 2008년 선진국 친목모임이라고 놀림받는 G8을 대신하는 정상회의로 발전했다. 그러나 회원국의 대표성 문제, 선진국과 신흥국 간 이해갈등으로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합의를 실행에 옮길 집행기구(사무국)가 없다 보니 말뿐이라는 한계도 뚜렷하다. 이번 G20도 중국의 굴기를 과시하려는 시진핑과 ‘차르의 귀환’을 노린 푸틴이 주연, 조연을 맡은 연극이라는 혹평이 나온다. 전신인 G33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황유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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