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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00주기’ 독립투사 재조명 받는 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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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100주기’ 독립투사 재조명 받는 나철

입력
2016.09.0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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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보성군에서 11월 추모제

전남 보성 출신 독립운동가 홍암(弘巖) 나철(1863~1916) 선생
전남 보성 출신 독립운동가 홍암(弘巖) 나철(1863~1916) 선생

민족종교인 대종교 창시자로 항일 독립투쟁을 이끌었던 전남 보성 출신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 선생이 서거한 지 올해 100년을 맞아 그의 삶과 정신이 재조명된다.

1863년 벌교에서 태어난 홍암 선생은 1891년 과거에 급제해 관료의 길을 걷지만 일제의 침략에 항거해 관직을 거부하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대종교 창시 이전 1907년 유신회를 조직해 이완용 등 을사오적 처단에 나선 정미대 사건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단군교를 민족종교인 대종교로 만들어 개천절을 복원했고 1914년 만주에 대종교 총본사를 설치해 항일독립투쟁의 본산으로 활용했다. 1915년 일제가 대종교를 불법 항일독립단체로 규정하며 본격적인 탄압을 시작하자 선생은 이듬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54세의 나이로 자결했다.

선생 서거 후에도 만주에서의 항일 독립운동과 무장투쟁은 대종교 신도들에 의해 본격화됐다. 홍범도 이동녕 김좌진 이범석 현천묵 여준 등 많은 대종교인이 무장 독립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대종교 2대 교주인 김교헌은 1918년 재외 독립운동 지도자들을 모아 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했고 동경 유학생들의 2ㆍ8독립선언서와 3ㆍ1독립선언서의 발판이 됐다. 김구 이승만 안창호 선생 등도 대종교 신도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개천절이 국경일로,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으로 제정됐으며 서기가 아닌 단기가 정부 공식 연호로 채택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를 통한 민족정신 운동가로 독립투사로 일생을 바쳤지만 대부분의 활동무대가 일본과 만주였던 데다 남겨진 기록들도 많지 않다. 또 일제의 지속적인 탄압과 해방 후 밀려온 서구 종교의 배타적 태도, 대종교 인사들의 대응 실패 등으로 현재는 사회적 관심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그나마 올해 서거 100주기를 맞아 오는 15일 서울 종로의 단군성전에서 추모제가 열린다. 선생의 고향인 보성군에서는 11월 추모제와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선생이 태어난 벌교읍 금곡마을에 기념전시관을 개관한다.

보성군 관계자는 “우리의 근현대사가 나철 선생과 대종교에 빚진 것이 한둘이 아닌데도 그들에 대한 관심은 창피할 정도로 미미하다”며 “이들이 쌓은 공헌과 위상에 견줄만한 조명과 평가가 하루 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보성=하태민 기자 ham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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