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인도에 채식주의자들이 많은 이유는)에서는 채식을 실천하는 종교, 곧 힌두교와 자이나교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특정 고기만 먹지 않는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한다. 다른 고기는 먹으면서 특정한 고기만 먹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고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특정 고기라도 먹지 않는 것이 동물의 고통을 줄이고 채식주의를 널리 알리는 데 도움이 되므로 굳이 소개하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한다. 일체의 육식을 금하는 힌두교와 자이나교가 인도에서 시작된 종교라면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중동 지방에서 시작된 종교라는 공통점이 있다. (역시 인도의 종교인 불교도 수도자에게는 육식을 금하고, 중동 지방에서 시작된 종교인 천주교와 기독교를 포함한 크리스트교도 경전인 구약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한다. 그런데 왜 불교에서는 일반 신자에게 육식을 금하지 않고 크리스트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하지 않는지 다음 기회에 살펴보겠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그리고 크리스트교도) 아브라함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아브라함 종교’라고 부른다. 이들은 대체로 구약의 말씀을 받아들이는데, 레위기 11장에는 “짐승 가운데 굽이 갈라지고 그 틈이 벌어져 있으며 새김질하는 것은 모두 너희가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새김질하거나 굽이 갈라졌더라도 이런 것들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돼지가 낙타, 오소리, 토끼와 함께 먹을 수 없는 구체적 사례로 나열되어 있다.
왜 그런 짐승들을 먹지 말라고 했을까? 구약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니 그냥 신의 말씀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고 굳이 이해하려고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성경의 위 구절에 바로 이어서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도 먹지 말라고 했다. 조개, 오징어, 상어 따위도 먹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것은 문화인류학적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냉장 시설이 발전하지 않은 과거에는 “여름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지방이 많은 돼지고기는 더운 날씨에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항상 기온이 높은 중동 지방에서 돼지고기를 잘못 먹었다가 탈이 나기 쉬우니 교리로 금지하는 것은 합리적인 것 같다. 더구나 돼지는 엄청나게 먹어대는데 기껏해야 목초지밖에 없는 중동 지방에서 돼지를 기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유야 어찌됐든 돼지들에게는 이슬람교나 유대교 신자들이 고마울 것이다. 이슬람교 신자는 전 세계의 20%가 넘는다고 하니, 먹기 위해 죽어 나가는 돼지가 그만큼 줄어들어 돼지에게는 행운 아닌가? 그러나 꼭 그렇게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19세기의 작가인 레슬리 스티븐(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로 더 유명하다)는 “유대인들만 있다면 돼지는 아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 세상에 유대인이나 이슬람 신자처럼 돼지고기를 안 먹는 사람이 있으면 돼지에게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 돼지를 기르지 않았을 테니 돼지는 멸종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정말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다면 돼지는 사라졌을까. 그렇다면 거꾸로 돼지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돼지를 존재하게 하는 셈이니 돼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일까. 실제 20세기 초 영국의 작가로 동물권리 운동의 창시자이며 채식을 했던 헨리 솔트는 스티븐과 같은 생각을 ‘식료품실의 논리’라고 불렀는데, “식료품실을 고기로 가득 채워 놓은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풍자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참,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할 뿐만 아니라 소고기나 닭고기도 특별한 의식을 거쳐 잡은 경우에만 먹을 수 있게 한다. 그 의식을 이슬람교에서는 ‘할랄’이라고 하고 유대교에서는 ‘코셔’라고 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할랄 식품을 만드는 공장을 세우려는 지방자치단체와 이슬람 문화 확대 등의 우려로 이를 반대하는 일부 크리스토교계가 갈등을 빚어 많이 알려졌다.
할랄이나 코셔 도축 방식의 핵심은 살아 있는 동물을 단숨에 죽이는 데 있다.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는데, 현대에는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킨 다음 도축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그런 식의 도축은 오히려 잔인한 방식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단숨에 죽여도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할랄이나 코셔 식품은 동물보호단체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최훈, 강원대학교 교수, 철학,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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