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돌볼 사람 없어 일용직 선택
사고 당일도 함께 나갔다가 참변
불법정차 탑차와 충돌 모두 숨져
피로 누적돼 밤길 졸음운전한 듯
생계를 위해 지적 장애가 있는 8살 아들을 트럭에 태우고 전국의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40대 가장이 불법정차중인 대형 탑차를 들이받아 모두 숨졌다. 밤길 운전 도중 누적된 피로로 졸음에 이기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6일 오전 1시 49분쯤 부산 사상구 낙동대로에서 임모(47)씨가 몰던 1톤 트럭이 편도 4차로 도로변에 정차된 25톤 탑차를 들이받고 굉음을 내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임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들은 출동한 119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사고 발생 1시간여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평소에도 임씨는 돌볼 사람이 없는 지적장애 2급인 아들을 데리고 일을 다녔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씨는 8~9년 전 베트남 국적의 아내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그의 나이 마흔쯤이었다. 아들은 성장하며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았다.
아내는 장애 아들을 두고 가출해 연락이 두절됐다. 유족들은 경찰에서 “부인이 3년 전쯤 집을 나간 이후 아이는 고모가 키웠다”며 “올해 3월 아이가 특수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빠와 함께 살게 됐다”고 말했다.
임씨에게 아들은 보물 같은 존재였다. 아들이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입버릇처럼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고 주변에 이야기했다.
임씨의 형수는 “임씨가 정시 출퇴근하는 직장에 다닐 경우 아들이 아프거나 할 때 제대로 보살피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일용직을 택했다”고 전했다.
고된 건설현장에서 일하며 지쳤을 임씨지만 아들은 끔찍이도 아꼈다. 특수학교에서 통학버스를 타고 아들이 돌아올 때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아빠 임씨였다. 함께 있을 때는 늘 말동무가 되어 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면서도 일감이 있을 때마다 건설현장을 찾았다. 아들을 위해 한 푼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경찰은 임씨가 사고 당일에도 아들을 데리고 일을 나갔다가 귀가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차량은 한달 전 폐암으로 숨진 임씨의 작은 형이 물려준 유품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는 바람에 운전대와 대시보드를 강하게 충격해 변을 당했다.
이날 임씨의 차량이 추돌한 25톤 탑차는 사고지점 인근 업체에 식자재를 납품하려다가 업체의 문이 잠겨있어 도로변에 정차하고 있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지자 임군이 다니던 학교 선생님들은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담임선생님은 “불과 하루 전까지 환하게 웃으며 수업을 받던 아이가 사고를 당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학교생활도 밝고 건강하게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임씨의 차량이 급정지하거나 방향을 전환한 흔적이 없고 사고 현장 주변의 조명이 밝았던 점으로 미뤄 졸음운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부산=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