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여자야구가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광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부산 기장군에서 열리고 있는 2016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서 상위 6개국이 나가는 슈퍼라운드에 진출해 7일 오전 9시30분 대만과 첫 경기를 벌인다. 참가 12국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인 세계랭킹 11위의 한국으로서는 불가능했던 ‘기적’이다. 게다가 랭킹 8위 쿠바와 경기에서는 1-3으로 패색이 짙던 6회말 4-3으로 뒤집는 명승부를 연출했다. 여자야구는 7회까지만 진행된다.
이변의 원동력은 예상보다 탄탄한 마운드다. 국제대회일수록 투수력에서 승부가 갈린다. 그런 점에서 대표팀의 투수코치로 합류한 김용수(56) 전 LG 코치의 지도력이 새삼 돋보인다는 평가다. 베네수엘라와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콜드 게임패하긴 했지만 워낙 수준 차가 컸고, 이미 슈퍼라운드 진출을 확정 지은 상황이라 총력전을 벌일 이유도 없었다.
김 코치는 6일 본보와 전화통화에서 “4월 말부터 합류해 주말마다 선수들과 훈련했다”면서 “땀 흘렸던 선수들이 노력의 결실을 거둔 것 같아 기쁘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김 코치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는 “(여자야구 선수들은)평범한 직장인이고, 학생들이다. 그저 동호인 수준으로 즐기는 정도의 선수들”이라면서 “야구를 직업으로 하는 세계 강호들과 이 정도 경기를 한다는 것이 나도 놀랍다”고 말했다. 주효했던 원포인트 레슨은 변화구 사사였다. 그는 “남자 선수들과 가장 큰 차이다. 직구밖에는 던질 줄 몰랐던 투수들에게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가르쳐줬는데 운동 신경들이 좋고 열정이 있어 금세 체득하더라”고 말했다. 110㎞의 빠른 볼을 던지는 대표팀의 최연소 김라경(17)은 김 코치가 가르쳐준 변화구를 터득해 유인구로 사용했고, 쿠바전 마지막 투수로 나갔던 배유가(27)도 변화구를 섞어 던지며 2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다.
김 코치는 “열악하고 척박한 환경이지만 야구가 좋아 뛰는 선수들을 위해, 한국 여자야구발전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이광환 감독님의 부름에 기꺼이 합류했다”고 밝혔다.
김 코치와 이 감독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감독이 LG의 창단 두 번째 우승을 이끌었을 때 김 코치는 당시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우승 주역이었다. 지도자로 호흡을 맞춘 건 이 감독이 LG의 두 번째 지휘봉을 잡았던 2003년 2군 투수코치를 지낸 이후 13년 만이다. 김 코치는 LG 유일의 영구결번 선수로 레전드 대접을 받고 있지만 2009년을 끝으로 LG 유니폼을 벗은 이후 행보는 순탄하지 않았다. 중앙대 감독을 거쳐 2014년 말 롯데 코치로 갈 뻔하다가 갑자기 과거 행적을 문제 삼은 롯데 구단의 계약 철회 결정으로 없던 일이 됐다. 김 코치는 “내 불찰이었다”라면서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겠지만 프로 무대에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헌신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는 이 감독과 김 코치의 친정인 LG(전자ㆍ생활건강)가 타이틀스폰서로 나선 대회다. 구본준 LG 트윈스 구단주는 2012년부터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를, 2014년부터 ‘LG컵 국제여자야구대회’를 개최할 만큼 여자야구 저변 확대에 적극적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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