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하면 사드 불필요하다지만
병 근원 놔두고 증상만 치료하는 꼴
남북관계 개선으로 돌파구 열어야
한의학의 치료 원칙에 ‘표본완급’(標本緩急)이란 게 있다. 표는 증상이고 본은 병의 근본 원인이다. 증상이 급하면 표를 먼저 치료하고, 급하지 않으면 근본부터 치료한다. 둘 다 급하고 중하면 표와 본을 동시에 치료하는 게 원칙이다. 즉 표본겸치(標本兼治)다.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제11차 G20회의에서 이 표본겸치가 화두다. 주최국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5일 오후 개회 연설에서 이 말을 화두로 띄웠다. 시 주석은 세계경제가 여러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다면서 “국제사회는 이번 G20 정상회의를 통해 문제의 증상과 원인을 함께 치료하는 표본겸치의 처방을 내놓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8년 전 세계금융위기 당시 G20은 ‘동주공제’(同舟共濟,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넘)의 정신으로 벼랑 끝에 있던 세계경제를 안전과 회복으로 이끌었다고 운을 뗀 뒤 한 얘기다.
앞서 시 주석은 이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과 가진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표본겸치를 거론했다. 박 대통령이 주한미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조건부 배치론을 편 것에 대해 반대 견해를 밝히는 과정에서다. 시 주석은 “우리는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는 사드 시스템에 반대한다”고 못 박은 뒤 “이 문제의 처리가 좋지 못하면 지역의 전략적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고 유관 당사국 간의 모순을 격화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ㆍ안정, 대화ㆍ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등 예의 ‘한반도 문제 해결 3대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6자회담 틀을 견지하면서 각국의 우려를 전면적이고 균형 있게 고려해 ‘지엽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을 함께 다스리는 방식’ 즉 표본겸치로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ㆍ안정을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시 주석이 말하는 한반도 문제에서 ‘지엽적인 것’과 ‘근본적인 것’은 각각 무엇을 뜻할까. 이에 대해 시 주석이 정상회담 중 박 대통령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반도 문제의 ‘표본겸치 처방전’을 여러 번 강조한 바 있어 그 뜻을 알기 어렵지 않다. 중국 시각에서 한반도 문제의 근본 뿌리는 정전체제하의 냉전구도다. 북한 핵과 미사일 등 한반도 갈등과 대결을 부추기는 사안들은 이 근본 뿌리에서 파생된 지엽적인 것, 즉 증상에 불과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날로 고도화하고 있는 북한의 핵과 탄도 미사일 위협은 불과 수분의 사정거리에 있는 우리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라며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북핵과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 배치가 필요 없다는 이른바 조건부 사드 배치론도 역설했다. 하지만 시 주석은 근본 원인인 정전체제하의 냉전구도 해소 즉 평화협정 체결과 함께 풀어 가자고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친 셈이다.
서두에 언급한 한의학 표본완급 치료 원칙으로 말하면 박 대통령은 화급한 증상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했는데, 시 주석은 증상과 근본의 동시치료라는 다른 치료법을 제시한 것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이번 러시아 및 중국과의 연쇄 정상회담에서 사드 갈등 해법으로 제시한 조건부 배치론은 동력을 얻기 힘들어졌다.
박 대통령이 말한 사드 배치가 필요 없게 되는 ‘북핵과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이라는 조건에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해 보다 강한 압박에 나서 달라는 요구가 포함돼 있다. 나아가 그런 압박을 통해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 생각이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 붕괴를 원치 않는 중, 러가 사드 조건부 배치를 해법으로 수용할 리 없다.
그렇다면 북핵ㆍ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바로 냉전구도의 해소이고, 여기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밉든 곱든 김정은 정권과의 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최근 부쩍 김정은 체제의 동요와 붕괴 가능성을 언급한다. 남북 간 대화와 관계개선은 꿈도 꾸지 말라는 태세다. 답답하고 안타까운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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